가서 너도 이와 같이 하라(20190307 사랑선교교회 이다솔 목사)

작성일
19-03-11 09:15
조회수
1,584
작성자
관리자

가서 너도 이와 같이 하라

201937일 사랑선교교회 이다솔 목사

10:25~37

10:25 어떤 율법교사가 일어나 예수를 시험하여 이르되 선생님 내가 무엇을 하여야 영생을 얻으리이까

10:26 예수께서 이르시되 율법에 무엇이라 기록되었으며 네가 어떻게 읽느냐

10:27 대답하여 이르되 네 마음을 다하며 목숨을 다하며 힘을 다하며 뜻을 다하여 주 너의 하나님을 사랑하고

또한 네 이웃을 네 자신 같이 사랑하라 하였나이다

10:28 예수께서 이르시되 네 대답이 옳도다 이를 행하라 그러면 살리라 하시니

10:29 그 사람이 자기를 옳게 보이려고 예수께 여짜오되 그러면 내 이웃이 누구니이까

10:30 예수께서 대답하여 이르시되 어떤 사람이 예루살렘에서 여리고로 내려가다가 강도를 만나매 강도들이

그 옷을 벗기고 때려 거의 죽은 것을 버리고 갔더라

10:31 마침 한 제사장이 그 길로 내려가다가 그를 보고 피하여 지나가고

10:32 또 이와 같이 한 레위인도 그 곳에 이르러 그를 보고 피하여 지나가되

10:33 어떤 사마리아 사람은 여행하는 중 거기 이르러 그를 보고 불쌍히 여겨

10:34 가까이 가서 기름과 포도주를 그 상처에 붓고 싸매고 자기 짐승에 태워 주막으로 데리고 가서 돌보아 주니라

10:35 그 이튿날 그가 주막 주인에게 데나리온 둘을 내어 주며 이르되 이 사람을 돌보아 주라 비용이 더 들면

내가 돌아올 때에 갚으리라 하였으니

10:36 네 생각에는 이 세 사람 중에 누가 강도 만난 자의 이웃이 되겠느냐

10:37 이르되 자비를 베푼 자니이다 예수께서 이르시되 가서 너도 이와 같이 하라 하시니라

 

저는 목사된지 1년 된 젊은 목사입니다.

교육선교사로 동아리 사역을 하고 있습니다. 불러 주어서 감사를 드립니다.

주로 10대와 청년들을 많이 만납니다. 말도 빠릅니다.오늘 여러분 앞에 서니 긴장이 됩니다.

말을 천천히 하도록 하겠습니다.

 

오늘 본문은 많은 사람들이 들어서 잘 아는 내용입니다.

예수를 믿지 않는 사람들도 선한 사마리아인 이야기는 한번쯤 들었을 것입니다.

요약하여 말씀드리면

한 사람이 예루살렘에서 여리고로 내려가다가 강도를 만나 모든 것 털리고 심하게 맞아

피를 흘리며 반쯤 죽어 쓰러져 있는데 마침 그 길로 가던 제사장이 보고는 피하여 그냥

지나갔습니다. 조금 있다가 레위인이 피흘리고 쓰러져 있는 사람을 보고 피하여 지나갔습니다.

그런데 조금 있으니 사마리아 사람이 지나가다가 강도 만나 피를 흘리고 있는 사람을 보고

달려가 기름을 바르고 상처부위에 응급처치를 하고 자기 나귀에 태워 주막까지 데리고 가서

돌보아 주고 자신의 바쁜 일정 때문에 이 사람을 주막 주인이 돌봐 주도록 돈을 드리고

돌아올 때에 추가 비용은 드리겠다 하고 갔습니다.

 

예수님이 하신 말씀의 배경을 이해해야 합니다.

당시 유대인들은 선민 사상이 골수에 박혀 이스라엘 민족이 아닌 이방인을 멸시하고

특히 본문에 나오는 사마리아인은 저주하기까지 미워하고 상종도 하지 않았습니다.

선민사상이 저들을 지배했습니다. 하나님이 우리를 택했다. 우리는 하나님의 택한 민족이다.

지금도 유대인들은 이 선민사상을 가지고 살아갑니다. 선택받고 구별된 사상을 가지고 있습니다.

전 세계 유대인들이 비즈니스를 잘하여 세계 금융을 지배하고 있습니다.

그 원천이 바로 선민사상에 기인합니다.

고객과의 약속은 목숨을 걸고 지켜라 .. 우리는 선택 받은 백성이다. 이것이 선민사상입니다.

당시에나 지금도 저들은 선민사상을 가지고 메시야를 기다리고 있습니다.

당시에 유대인들은 이방인을 경멸했습니다. 그 중에 사마리아 사람들을 가장 경멸했습니다.

,돼지처럼 여겼습니다. 그들과 만나지도 ,대화하지도, 같은 상에 밥을 먹지도 않았습니다.

사마리아 마을을 쳐다보지도 않았고 그 길로 가지도 않았습니다.

오죽하면 예루살렘에서 갈릴리로 갈려면 중간에 사마리아를 지나서 가는 길이 직선길인데

바로 가지 않고 당시 왕의 대로(무역루트)를 따라 삥 둘러 형태의 길을 돌아서 갈릴리로 갔습니다.

사마리아는 앗수르에 멸망한 북이스라엘의 수도였습니다.

그러다가 이방나라 앗수르의 친화정책에 따라 앗수르 사람들이 그 땅에 들어와 살았습니다.

그 땅의 사람들과 혼인하게 되고 자녀들이 태어나게 되었습니다.

이방민족의 피가 섞인 혼혈이라고 하여 태어난 아이들을 저주했습니다.

이스라엘 사람들은 저들을 용납하지 않았습니다. (왕하 17장 이후)

꼭 우리나라에 나병환자들이 사는 마을을 일반인들이 경원시하고 가까이 하지 않는 것과 비슷합니다.

선민 이스라엘 백성은 사마리아 사람을 동족이라 생각하지 않고 저주받은 백성으로

상종하지 않았고 철두철미하게 배척했습니다.

저들은 사마리아 사람들을 발가락의 떼보다 더 천시하고 증오했습니다.

이런 선민사상에 물들어 있든 시대적 배경을 이해하고 오늘 예수님이 하신 말씀을 들어보면

이해하기가 쉽습니다.

 

왜 예수님은 사마리아인을 비유로 말씀하셨을까?

그것은 본문 앞에 나오는 내용을 보면 알 수 있습니다.

예수님을 모함하고 꼬투리를 잡기 위해서 따라 다니던 유대인(바리새인) 율법학자들이 질문했습니다. 선생님 우리가 무엇을 해야 영생을 얻을 수 있습니까?

예수님은 질문의 의도를 알고 율법에는 무엇이라고 기록되어 있느냐?

율법학자가 네 모든 마음과 모든 목숨과 모든 힘과 모든 뜻을 다해 주 네 하나님을 사랑하라

또한 네 이웃을 네 몸같이 사랑하라 하였습니다.예수님이 옳다 그대로 행하라 했습니다.

그러자 이 율법학자가 자기 의를 나타내려고 그러면 누가 제 이웃입니까?” 하고 물었다

그 의도는 아마도 자기는 하나님의 주신 율법을 잘 알고 잘 지키고 행하고 있으니

참된 이웃은 아마도 자기를 말하리라 생각하고 물었던 것입니다.

이 율법학자의 잘못된 생각을 고쳐주기 위해 예수님이 선한 사마리아인 비유를 말한 것입니다.

아는 것에 그치는 것은 복음이 아닙니다. 너처럼 율법을 머리로 줄줄 외우고 있는 사람도

강도 만난 사람을 보고는 그냥 지나갔다. 율법을 가르치고 백성의 죄를 대신하여 제사를 드리는

제사장도 머리에는 율법이 가득했지만 그냥 지나갔다

그런데 유대인들이 상종도 하지 않는 사마리아 사람은 상처에 기름을 바르고 싸매주고 치료를 하고

나귀에 태워 주막에 데려갔다.

예수님은 이 사람을 질책하기 위해 너희들이 개,돼지만도 못하게 생각하는 사마리아인을 들어서 말했습니다. 그리고 예수님이 이 사람에게 말합니다.

이 사람들 중에 누가 강도만난 자의 이웃이라고 생각하느냐?

율법학자는 죽어도 사마리아 인이라고 답하기 어려웠던 것입니다.

끝까지 사마리아인이라고 답하지 않고 자비를 베풀어 준 사람이라고 답했습니다.

머리속에 율법으로 가득차 있지만 생명의 능력이 없이 모양만 가진 유대인을 예수님은 질책한 것입니다. 너도 사마리아 사람처럼 해라... 이것이 복음입니다.

 

성경에 비유가 나타날 때에는 성경 앞 뒤 문맥을 살펴 보아야 합니다.

본문 눅1013절에 고라신아! 벳새다야! 너 가버나움아 하면서 무서운 질책을 하셨습니다.

베드로,안드레의 고향이 벳새다입니다.오병이어의 기적을 일으킨 곳입니다.

가버나움은 예수님의 갈릴리 사역의 중심지입니다. 이곳을 기점으로 복음을 전하고 돌아와서 쉬고 했습니다.

고라도 가버나움에 가까운 곳입니다.

세 곳은 예수님의 복음사역을 가장 많이 듣고 본 지역입니다.그런데 이 지역의 유대인들이

회개하지 않고 오히려 두로와 시돈 이방 사람들이 회개하고 돌아 왔습니다.

말씀을 듣고 행하지 않는 자들을 강하게 책망하면서 본문의 비유를 말한 것입니다.

본문에서 비유의 목적은 사마리아인이 좋은 일을 했다 하는 단순히 동화나 교훈의 내용이 아닙니다.

이 본문은 예수님이 직접 행하고 가르치고 했는데 행하지 못하는 사람들에 대한 것입니다.

가르치고,보여주고, 행한, 예수님의 절규가 이 선한 사마리아인 비유에 들어 있습니다.

가서 너도 이와 같이 하라.복음의 능력은 살리는 것입니다.

사람은 태어나면서 죽음을 향하여 가고 있습니다. 모든 것이 죽기 위해는 사는 것처럼 보입니다.

그런데 예수님을 만나면 죽을 수 밖에 없는 우리를 살려 영원히 살게 합니다.

이것이 복음입니다. 살려서 영원히 주님과 살도록 영생을 주시는 것입니다

복음의 능력은 살아나는데서 끝나는 것이 아닙니다. 그것은 복음의 능력이 아닙니다.

우리를 통하여 또 다른 영혼이 살아나는 것이 하나님이 우리에게 주신 소명이고

값없이 주신 은혜이고 복음의 능력입니다.여러분은 육신을 살리는 일을 합니다.

병원은 육신을 살리는 곳입니다.

맑은샘병원의 이념을 보고 큰 감동을 받았습니다.

하나님이 주신 인간의 존엄성이 질병으로 인해 훼손된 것을 그리스도의 사랑과 참된 의술로 치유

하여 인간이 누려야 할 가치있고 행복한 삶을 영위하도록 하고자 한다.

여기에 복음이 있습니다.

인간의 제일 목적은 하나님을 영화롭게 하고 그와 함께 영원히 그를 즐거워 하는 것입니다.

병원의 이념이 웨스트민스트 신앙고백처럼 선한 사미리아인처럼 살아

사람들을 치료하여 살리는 것이 하나님을 영화롭게 하는 것입니다.

우리에게 주어진 영혼을 살리는 능력으로 동시에 육신의 병도 고치는 여러분 되기를 바랍니다.

병원의 직원 여러분은 선한 사마리아인입니다.


이다솔 목사님의 다솔은 다윗과 솔로몬의 앞 자를 따서 만든 이름입니다.

이전글
"사람이 없습니다" (20190314 마산봉덕교회 강정식 목사)
다음글
손을 대니 (20190228 밀양남부교회 이완종 목사)
목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