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수님께 잡힌 바 된 사람(20140309 박철규 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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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관리자 댓글 0건 조회 2,399회 작성일 14-03-10 14:39본문
예수님께 잡힌 바 된 사람
2014년 3월 9일 맑은샘 주일예배 박철규 목사
성경 빌3:12-14
3:12 내가 이미 얻었다 함도 아니요 온전히 이루었다 함도 아니라 오직 내가 그리스도 예수께
잡힌 바 된 그것을 잡으려고 달려가노라
3:13 형제들아 나는 아직 내가 잡은 줄로 여기지 아니하고 오직 한 일 즉 뒤에 있는 것은
잊어버리고 앞에 있는 것을 잡으려고
3:14 푯대를 향하여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하나님이 위에서 부르신 부름의 상을 위하여 달려가노라
어느 여론조사기관에서 조사를 하였습니다, 어떤 말을 들으면 기분이 좋으냐? 단어가 무엇인지
물었습니다.“행복”,“감사”,“어머니”그리고 “사랑합니다”를 들으면 기분이 좋고 행복을
느낀다고 합니다.
오늘은 교회절기상 사순절 첫째주일입니다. 부활절 주일을 뺀 역순으로 40일간을 사순절로
니케야 종교회의에서 결정한 이후 지금까지 지켜오는 교회의 대표적 절기입니다.
사순절 기간은 예수님의 십자가와 고난을 기억하고 주변에 어려운 가정을 돌아보며,
마음을 모아 금식하며 기도하는 절기입니다.
오늘 본문의 키워드는 12절에 있는
내가 이미 얻었다 함도 아니요 온전히 이루었다 함도 아니라 오직 내가 그리스도 예수께
잡힌 바 된 그것을 잡으려고 달려가노라입니다.
기독교 신앙은 파라독스 역설을 강조합니다.
저와 여러분은 예수그리스도에게 붙잡힌 존재입니다. 본문에서는 잡힌 바 된 자라고 표현했습니다.
우리가 믿음으로 예수님께 잡혔지만 또한 예수님을 잡으려고 나아가는 자발적인 존재입니다.
부자유속에 자유라는 말처럼 우리는 메여 있으면서 자유를 누리고 살아갑니다.
요8:32 진리를 알지니 진리가 너희를 자유롭게 하리라
참 진리는 예수님입니다. 우리는 진리 안에서 자유를 누립니다.
요14:6 예수께서 이르시되 내가 곧 길이요 진리요 생명이니 나로 말미암지 않고는 아버지께로
올 자가 없느니라
예수 안에 자유는 역설적으로 예수님께 잡힌 바 되어야 합니다.
1.우리는 예수님께 잡혀 있다
인간은 자유를 추구하지만 항상 어느 것에 붙잡히든지 메여서 살아갑니다.
세상 사람들은 돈, 명예, 물질,욕망, 탐욕, 알콜,마약, 섹스,등에 메여서 살아갑니다.
사람들은 누구에게 혹은 무엇에 메여 있느냐 그것이 중요합니다.
참된 행복은 예수니께 메여 있을 때 찾아옵니다.
예수님은 우리의 생명의 주인이고 천지의 주인이기 때문입니다.
사도 바울은 자기의 세상적 이력을 말할 때 좋은 가문, 학벌, 지위, 혈통등을 가졌으나
그리스도 예수를 아는 것이 가장 고상하여 세상의 모든 것을 배설물처럼 버렸다고 했습니다.
예수님께 붙잡히면 바울처럼 고백해야 합니다.
참 신앙인은 예수님께 붙잡힌 존재입니다, 나는 포도나무요 너희는 가지니 했습니다.
참 신앙인은 예수님께 묶인 존재입니다.
참 신앙인은 교회에 묶여 있어야 합니다.
이렇게 하면 그는 예수안에 참된 평안과 행복을 누리고 믿음으로 살아가는 바울 같은 사람이
될 것입니다. 우리 모두는 주님 앞에 붙잡혀 있어야 합니다.
붙잡혀 있어야 열매를 맺습니다.
바울은 그의 신앙고백에서
갈1:15 그러나 내 어머니의 태로부터 나를 택정하시고 그의 은혜로 나를 부르신 이가
1:16 그의 아들을 이방에 전하기 위하여
바울은 어머니의 태에서부터 이방인의 사도로 택정함을 입었다고 말합니다. 그는 자기 인생의
모든 것이 하나님께 메여 있음을 고백한 것입니다. 여러분도 이런 고백을 하시길 바랍니다.
성도는 예수 그리스도의 보혈의 피 값으로 산 자라고 성경은 말합니다.
고전7:23 너희는 값으로 사신 것이니 사람들의 종이 되지 말라
우리는 이제 예수님께 팔린 인생입니다. 세상의 종이 되지 말고 예수님의 종이 되어야 합니다.
바울은 빌립보에 편지하기를
빌 1:21 이는 내게 사는 것이 그리스도니 죽는 것도 유익함이라
주 안에서 죽는 것이나 사는 것이 모두 유익하다고 말합니다.
그리스도안에 있으면 세상을 보는 눈이 달라집니다.
육적인 시각에서 영적인 시각으로 그 차원이 달라집니다.
나이가 드신 많은 성도들이 간증하는 것은 인생의 주관자가 예수님이었다고 고백합니다.
예수님께 메인 자는 복을 받은 자입니다.
2.예수님께 메인 자는 예수님의 뜻을 좇아 사명(사역)을 감당해야 합니다.
본문 3장12절에
우리가 예수님께 잡혀 있는데 또한 예수님을 잡으려고 달려간다고 말하고 있습니다.
이것은 우리가 예수님께 잡혀 있지만 예수님의 은혜로 자발적으로 뛰어 가는 것을 말합니다.
창세기에 보면 요셉이 형들의 미움으로 구덩이 빠지고 노예상인에게 팔려가고 보디발의 종이 되고
죄수로 옥에 갇혔으나 그는 어디에 있든지 좌절하지 않고 최선을 다하였습니다.
억울하게 감옥에 가면 대부분의 사람들은 분노하고 억울함을 호소하고 감옥 안에서 불만을 터뜨릴
것입니다. 그러나 요셉은 성경 그 어디에도 그렇게 하지 않고 묵묵히 최선을 다하므로
옥에 갇힌 사람들을 보살폈습니다. 술맡은 관원장을 살폈고 떡 굽는 관원장도 살폈습니다.
수인들을 살피고 최선으로 그들을 도와 결국은 그것이 계기가 되어 총리가 됩니다.
어떤 일이든지 , 어떠한 환경이든지 불평하지 않고 남을 도우는 요셉의 자세야 말로
오늘 우리가 배워야 할 가장 소중한 신앙의 덕목일 것입니다.
우리도 우리 주변에 많은 사람들을 살피고 도와 주어야 합니다.
유서를 남기고 세모녀가 자살한 이야기를 듣고 우리는 많은 것을 생각하게 됩니다.
우리 주위에도 어려움과 고통을 가지고 실의와 좌절에 메여 죽어가는 사람들이 있지는 않는지?
눈을 크게 뜨고 살펴 보아야 합니다.
여러분도고침을 받고 세상에 나가 어렵고 힘든 사람을 살펴보고 도움을 필요로 하는 사람이 있으면
적극적으로 도와 주시길 바랍니다.
국가나 제도를 탓하기 전에 우리 크리스찬들이 먼저 도움을 주어야 합니다.
가난한 사람들, 고아와 과부로 우리에게 다가오는 예수님을 우리는 애써 외면하지 않습니까?
헐벗고 굶주린 사람들을 돌보는 것은 바로 예수님의 일을 하는 것이며 예수님을 만나는
것입니다.작은 소자에게 한 일이 결국은 주님에게 하신 일이 되는 것입니다
양은 목자 되신 주님을 따라가야 합니다.
수동적으로 따라가는 것이 아니고 능동적으로 따라가야 합니다.
나이, 건강, 재산, 외모등에 메여 있지만 그러나 거기에서 최선으로 주님께 달려가야 합니다.
정채복님의 코뚜레 송아지 이야기 (동화)를 들어 보았을 것입니다.
어느 어미소가 송아지 새끼를 두 마리 낳았습니다. 송아지는 무럭무럭 자라 코를 뚧어 코뚜레를
하려고 하니 형 송아지는 자유로운 것이 좋다고 하여 하지 않았습니다. 동생 송아지는
코뚜레를 하였습니다. 세월이 지나 두 송아지는 황소가 되었습니다.
자유를 만끽하던 형 송아지는 살이 많이 쪄 뛰뚱 뛰뚱 거리며 코뚜레를 하지 않은 것을 자랑으로
이야기 했습니다. 그러나 둘째 소는 열심히 코뚜레를 하고 일하여 그렇게 살이 찌지 않았습니다
어느 날 보니 형 소가 사라졌습니다. 도살장에 끌려 간 것입니다.
작은 소는 열심히 일했습니다. “코뚜레 한 소가 일한다”는 동화가 나오게 된 것입니다.
우리도 그리스도 안에 메여 있을 때 일하게 됩니다.
자기 마음대로 사는 사람은 어느 곳에 적을 두지 않습니다.
그는 결국에 형 소처럼 도살장에 끌려가는 신세가 되고 말 것입니다.
여러분들은 주님 앞에 붙잡힌 바 된 사람이 되십시오
이제 결론으로
하나님은 저와 여러분을 여기까지 메어 놓았습니다.
직분으로 메어 두고, 가정으로 메어 두고, 사회적 지위로 메어두고, 나이로 메어두고
여러 가지 메인 것은 주님이 하신 것입니다.
메인 것으로 감사하고 충성하는 여러분 되십시오
우리가 살아가면서 깨닫는 것은 주님 안에 메임으로 인하여 그 메임이 주님 앞에
디딤돌이 되고 징검다리가 되는 것입니다.
삶의 모든 것은 예수님께 뿌리 내려야 합니다.
예수 안에서 주와 동행하는 임마누엘의 신앙인이 되기를 축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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