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을 보고 우시며(20160306 박철규 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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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관리자 댓글 0건 조회 2,056회 작성일 16-03-08 08:58본문
성을 보고 우시며
2015년 3월 06일 주일 박철규 목사
본문 눅19:41~44
19:41 가까이 오사 성을 보시고 우시며
19:42 이르시되 너도 오늘 평화에 관한 일을 알았더라면 좋을 뻔하였거니와 지금 네 눈에 숨겨졌도다
19:43 날이 이를지라 네 원수들이 토둔을 쌓고 너를 둘러 사면으로 가두고
19:44 또 너와 및 그 가운데 있는 네 자식들을 땅에 메어치며 돌 하나도 돌 위에 남기지 아니하리니
이는 네가 보살핌 받는 날을 알지 못함을 인함이니라
절기상 경칩이 되어 어제는 집앞 논에 개구리 우는 소리가 밤새 들렸습니다.
봄을 재촉하는 봄비가 촉촉이 내렸습니다.
여러분의 심령에도 하나님의 은혜로 따뜻한 봄비가 촉촉이 내려지기를 바랍니다.
사순절은 주님을 사랑하고 말씀에 순종하며 절제와 경건으로 생활하고 이웃을 사랑으로
섬기는 절기입니다.
본문에 주님이 예루살렘성을 보시고 우셨습니다.
신약성경에 웃는 자가 복이 온다고 되어 있지 않고 우는 자가 복이 있다 라고 기록되어 있습니다.
심령에 애통하는 자는 복이 있다 하였습니다.
4복음서에 주님이 웃으셨다는 기록이 나오지 않습니다.
이제 주님은 십자가를 지시기 위하여 예루살렘을 마지막으로 입성하시면서
성을 보시고 우셨습니다. 장래를 보고 우신 것입니다.
그들의 눈에는 가려져 평화에 대하여 모르고 있었지만 예수님은 그 멸망을 알고 계셨습니다.
이스라엘은 BC 931년 솔로몬 왕이 죽고 남북으로 나라가 분리되었습니다.
암흑기를 거쳐 로마의 식민지로 약 100년 동안 고통을 당하였습니다.
주님 오신 후에 AD 70년 로마 티투스 장군에 의해 예루살렘이 멸망당했습니다.(성벽이 무너졌습니다)
이 모습을 미리 아시고 우신 것입니다. 조국 이스라엘을 사랑하신 예수님입니다.
마태복음에는 더 진하게 표현이 되어 있습니다.
우리의 조국 대한민국이 6.25전쟁 이후 가장 위태로운 시기를 맞았습니다.
조국을 위해서 울면서 구국기도를 해야 할 때입니다.
이 어렵고 힘든 난국을 어떻게 극복해야 할까?
하나님 조국 대한민국과 우리가 살고 있는 거제를 살려 주십시오
현재 굉장히 어려운 상황입니다. 나라를 바로 세우고 지역을 바로 세우게 해 달라고 부르짖어야 합니다
개구리가 동면에서 깨어나듯이 우리도 영적으로 깨어나야 합니다.
2차 세계대전에 영국이 불리한 전황에서 영국의회가 비상대책회의를 진행 중 처칠이 눈을 감고
있는 모습을 보고 의장이 지적하여 지금 무엇을 하고 있습니까? 정신 차리세요 하니
처칠이 말하기를 나는 지금 조는 것이 아니고 조국을 위해 하나님 앞에 기도하고 있습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나라의 안보와 조국의 평화를 위하여 눈물로 기도해야 합니다.
예수님처럼 눈물로 조국을 위해 기도하는 여러분 되기를 바랍니다.
두 번째는 나사로의 죽음 앞에 우셨습니다.
마리아가 말한 것처럼 주께서 여기 계셨더라면 내 오라버니가 죽지 아니하였겠나이다 하더라
예수님은 나사로의 무덤 앞에서 우셨습니다.
나사로를 생각하고 우신 것입니다. 이것은 형제를 사랑하는 마음 즉 이웃을 사랑하는 마음으로
우신 것입니다.
이웃의 연약함을 생각하니 눈물이 난 것입니다.
오늘날 우리는 이웃을 위하여 우는 사람을 찾아 보기 어렵습니다. 영혼의 안구건조증이 걸려 눈물이
말라 아무도 이웃의 아픔을 걱정하는 사람이 없습니다.하루에도 수 많은 우리의 이웃이 고귀한
생명을 사고와 질병으로 인하여 죽어가고 있는데 우리는 무덤덤하게 받아 들이고 있습니다.
말세의 징조에 바울이 디모데에게 편지하기를
돈을 사랑하고, 자기를 사랑하는 시대라고 하였습니다.무정한 시대라고 하였습니다.
사람들이 자기를 사랑하며 돈을 사랑하며 자랑하며 교만하며 비방하며 부모를 거역하며 감사하지
아니하며 거룩하지 아니하며 무정하며 원통함을 풀지 아니하며 모함하며 절제하지 못하며 사나우며
선한 것을 좋아하지 아니하며 배신하며 조급하며 자만하며 쾌락을 사랑하기를 하나님 사랑하는 것보다
더하며 경건의 모양은 있으나 경건의 능력은 부인하니 이같은 자들에게서 네가 돌아서라.
이웃을 긍휼히 여기는 마음이 사라진 시대에 우리는 살아가고 있습니다.
성경은 성도들에게 작은 소자 (이웃)를 섬기라고 하였습니다. 그것이 주님을 섬기는 것이라고 하였습니다
여러분은 건강이 회복되면 작은 자를 섬기는 자리에 있기를 바랍니다.
눅10장에 강도 만난 사람의 이야기가 나옵니다.
피투성이로 그냥두면 피를 흘려 죽을 수도 있는데 당시 종교지도자인 제사장도 그냥 보고 못 본척 하고
지나가고 종교적 행사에 항상 동행하는 레위인도 보고 그냥 지나가고 오직 이방인 사마리아 사람만
그 사람을 치료해 주고 응급처치를 하고 주막에 데려가 안정을 취하고 주인에게 의탁했습니다.
주님은 결론에서 가서 너도 이와 같이 하라고 했습니다. 이것은 명령이고 성도의 마땅한 삶입니다.
예배드리기만 하고 말씀만 듣기만 하고 삶의 현장에서 고통당하는 자를 외면하면 그는 성경말씀대로
사는 것이 아닙니다. 그에게는 신앙의 열매가 맺히지 않을 것입니다.
이웃을 생각하며 울 수 있는 성도가 되어야 합니다. 그 영혼의 구원을 위해서....
세 번째 주님이 우신 것은 겟세마네 동산에서 기도하실 때입니다.
땀이 핏방울 같이 떨어지며 기도했습니다.
십자가를 지시기 위한 대속의 눈물입니다, 십자가를 감당하기 위하여 흘린 기도의 눈물입니다.
기도 없이는 어떠한 일도 감당하기 힘이 듭니다.
눈물이 흐르지 않는 교회와 성도는 친목단체가 되고 친목단체 회원이 되는 것입니다.
교회는 반드시 눈물의 기도가 있어야 합니다.
하나님 앞에 기도하여 그 분의 임재를 체험하고 말씀의 은혜를 받아야 합니다.
눈물의 기도가 있어야 영성이 생기는 것입니다
눈물은 참된 회개기도를 드릴 때 일어납니다.
하나님 나를 불쌍히 여겨 주십시오 나는 죄인입니다. 울면서 기도해야 합니다.
다윗의 회개기도를 우리는 배워야 합니다. 통회하는 마음을 주시옵소서
대부분의 성도들이 자신의 능력으로 모든 일을 처리합니다. 울면서 주님께 메달리지 않고
냉랭한 신앙생활을 합니다.
여러분은 주 안에서 항상 눈물이 마르지 않는 기도를 드리는 성도가 되기를 바랍니다.
사명을 감당하기 위해서는 항상 눈물로 나아가야 합니다.
성경에 대표적으로 눈물의 기도를 드려 응답받은 분이 히스기야 왕입니다.
벽을 마주보고 통곡하면서 기도하여 하나님의 응답으로 15년이나 생명의 연장을 받았습니다.
주일 예배를 드리면서 애통함이 없고 눈물의 기도가 없으며 주님께 가까이 나아가기가 어렵습니다.
어거스틴은 청년의 때 방탕한 생활을 했습니다. 배화교에 빠져 어머니의 근심이 되었습니다
어머니 모니카가 눈물로 기도하였습니다. 방탕자 어거스틴이 돌아와 성자가 되었습니다.
예수님- 바울- 어거스틴을 잇는 것이 기독교 신학의 기둥입니다.
어머니의 눈물의 기도가 있었기 때문에 그가 회개하고 하나님 앞에 돌아온 것입니다.
사순절은 성도가 하나님 앞에 우는 절기입니다.
이제 우리가 살고 있는 조국 대한민국을 위해 울어야 하고
아픔과 고통으로 신음하는 우리의 이웃을 위해 긍휼의 마음으로 울어야 하고
우리의 육신의 아픔을 회복시켜 달라고 울어야 하고
우리들의 자녀들을 위하여 울면서 기도하는 여러분 되기를 바랍니다.
눈물이 있는 곳에 신앙의 생명이 있고 참된 기쁨이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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