은혜(20160619 박철규 목사)

작성일
16-06-20 07:32
조회수
2,032
작성자
관리자

은혜

 

2016619일 박철규 목사

본문 눅15:1-10

15:1 모든 세리와 죄인들이 말씀을 들으러 가까이 나아오니

15:2 바리새인과 서기관들이 수군거려 이르되 이 사람이 죄인을 영접하고 음식을 같이 먹는다 하더라

15:3 예수께서 그들에게 이 비유로 이르시되

15:4 너희 중에 어떤 사람이 양 백 마리가 있는데 그 중의 하나를 잃으면 아흔아홉 마리를 들에 두고 그 잃은 것을 찾아내기까지 찾아다니지 아니하겠느냐

15:5 또 찾아낸즉 즐거워 어깨에 메고

15:6 집에 와서 그 벗과 이웃을 불러 모으고 말하되 나와 함께 즐기자 나의 잃은 양을 찾아내었노라

하리라

15:7 내가 너희에게 이르노니 이와 같이 죄인 한 사람이 회개하면 하늘에서는 회개할 것 없는 의인

아흔아홉으로 말미암아 기뻐하는 것보다 더하리라

15:8 어떤 여자가 열 드라크마가 있는데 하나를 잃으면 등불을 켜고 집을 쓸며 찾아내기까지 부지런히

찾지 아니하겠느냐

15:9 또 찾아낸즉 벗과 이웃을 불러 모으고 말하되 나와 함께 즐기자 잃은 드라크마를 찾아내었노라

15:10 내가 너희에게 이르노니 이와 같이 죄인 한 사람이 회개하면 하나님의 사자들 앞에

기쁨이 되느니라

 

누가복음 15장에 잃어버린 것을 찾는 세가지 비유를 예수님이 말씀하셨습니다.

첫째는 잃은 양 한 마리 비유입니다. 두 번째는 잃은 한 드라크마 비유입니다.

세 번째는 잃은 아들(탕자)을 다시 찾는 비유입니다.

본문의 비유는 세상의 비유와 그 성격이 다릅니다,

잃은 양 한마리 비유는 1/100 의 비유입니다. 전체 중에서 1%를 잃어버린 것입니다.

한 드라크마는 1/10의 비유로 10%를 잃어 버린 것입니다.

한 아들은 1/250%를 잃은 비유입니다.

비유에 등장하는 주인공으로 목자가 있고, 여자가 있고, 아버지가 등장합니다.

세 비유에 등장인물은 공히 하나님의 마음을 의미합니다.

비유의 공통점은 잃은 것을 찾은 후 잔치를 한 것입니다.그리고 크게 기뻐한 것입니다.

 

여기서 잃어버린 것을 찾는 것은 이성적으로 보면 비현실적입니다.

1%를 찾기 위하여 온종일 수고하고 노력한다는 것은 비현실적입니다.

인간의 일상과 경제적 논리로 보면 이해가 안 되는 부분입니다.

본문을 자세히 보면 예수님은 당시 사회 주역들인 바리새인과 서기관들과 어울리지 않았습니다.

오히려 천대 받는 사람들 저층에서 살아가는 세리와 죄인들과 어울렸습니다.

이것은 만유의 주이신 예수님이 베푸신 은혜입니다. 나 같은 죄인에게 다가오신 예수님

그것이 곧 은혜입니다.

본문과 비슷한 비유의 설명을 예수님이 하신 적이 있습니다.

포도원에 일할 사람을 구하기 위하여 제삼시부터 육시, 구시, 십일시까지 포도원에 일꾼을

들여보내 일을 시키고 주인은 각 1달란트씩 품삯을 주었습니다.

포도원 주인이 자기의 뜻대로 행한 권리입니다.

똑 같이 품삯을 주는 것이 하나님 나라의 은혜의 원리입니다. 이것은 하나님의 은혜입니다.

세상의 논리가 교회 안에 들어오면 안됩니다.

하나님의 나라를 연습하고 세워가는 곳이 주님 몸된 교회입니다.

하나님의 은혜의 원리를 모르면 세상의 법체계 원칙과 이성과 논리를 가지고 교회에서 주장합니다

교회는 은혜와 사랑의 공동체입니다.

1:99 이것은 경제적 논리로는 포기하거나 아웃소싱해야 합니다. 1%를 찾기 위하여 99%를 희생하거나

방치하지 않습니다. 과감히 1%는 버리는 것이 세상의 논리입니다.

그러나 우리 주님은 한 명의 생명을 구원하기 위하여 십자가를 지셨습니다.

그 한명이 바로 나입니다. 주님은 지금도 그 한명을 찾고 계십니다.

하나님의 사랑은 그 한명 한명으로 우리를 구원하여 주십니다. 이것이 주님의 의입니다.

결코 내 의가 아닙니다. 맑은샘교회는 행복하고 은혜로운 교회가 되어야 합니다.

은혜의 원리는 불공평하게 보일 수도 있습니다.공평하게 보이는 것은 세상의 원리입니다.

주님은 늦게 온 자, 먼저 온 자 똑 같이 품삯을 주었습니다.

영국의 주석가 바클레이는 정의보다 더 나은 것이 하나님의 은혜이고 복음이다하였습니다.

탕자의 비유에서 허랑방탕하게 탕진하고 돌아온 아들을 용서하는 것은 정의 편에서 보면 공평하지

않습니다.그러나 하나님의 은혜로 용서함을 받습니다. 불공평하지만 하나님은 용서해 주십니다.

오후 5시에 포도원에 들어온 사람은 감격했습니다.

우리도 5시에 들어온 일군처럼 주님으로부터 선택을 받고 구원을 받은 것입니다.

맑은샘교회 성도는 하나님의 교회에 선택받은 사람입니다.

선택 받은 사람은 감격합니다. 감사합니다. 그것이 하나님의 은혜입니다.

은혜는 하나님이 주신 믿음의 선물입니다. 구원의 선물입니다. 이 구원은 하나님이 개방한 것입니다.

은혜도 개방성입니다.누구나 하나님의 자녀가 될 수 있습니다.

누구든지 주의 이름을 부르면 구원을 얻습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은혜로 받아야 합니다.

정의를 말할 때 공로가 나오고 자기 의가 나오지만

하나님의 교회는 하나님 주신 은혜를 받고 살아가는 공동체입니다.

하나님의 은혜가 들어오면 변화가 일어나고 복음의 능력이 나타납니다.

하나님의 교회는 하나님이 주신 은혜 위에 서 있어야 합니다.

 

장발장을 보면 빵 한 조각에 19년이라는 감옥생활을 하고 출옥하여 다시 신부의 금잔을 훔쳐

달아나다 잡힙니다.감옥생활을 하였으나 그는 변화되지 못하였습니다. 정의로 사람을 변화시키지

못합니다. 감옥은 정의를 구현 하는 세상의 제도입니다.

그러나 신부가 사랑으로 장발장에게 내가 준 것이라고 하니 그가 변화됩니다.

그렇습니다, 정의가 사람을 변화시키지 못하고 은혜와 사랑이 변화를 시켰습니다.

세상은 강한 자가 이기고 살아가지만 교회는 약한 자가 이기고 살아갑니다.

세상은 힘을 숭배하지만 교회는 사랑을 실천합니다. 초대교회는 사랑의 공동체였습니다.

그러다 기독교가 로마의 국교가 되면서 기독교는 힘의 종교로 전락했습니다.

그러다가 다시 종교개혁으로 힘에서 사랑으로 세상 정의에서 하나님의 말씀으로 전환했습니다.

연약할 때 예수님 오셔서 우리를 도와 주십니다.

내가 죄인이었을 때 하나님이 나를 도와 주었습니다. 이것이 중요합니다.

양화진에 선교사 묘역을 보면 20대 젊은 선교사들이 이 땅에 와서 복음을 전하다 순교하고

병에 시달려 죽고 그들의 자녀들이 죽고 하여 어린 무덤들을 많이 봅니다.

어린 자녀를 풍토병과 열병으로 보내고 선교사님들이 복음을 전하다가 이 땅에서 죽었습니다.

그들의 조국은 잘 살았습니다. 조국이 그립고 부모형제가 그리웠을 것입니다.

그러나 복음 때문에 이 땅에 묻히게 되었습니다.우리는 이제 이 은혜의 빚을 갚아야 합니다.

은혜의 원리로 살아가는 여러분 되기를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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