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감과 존중하는 삶(20150920 박철규 목사)

작성일
15-09-23 07:44
조회수
2,126
작성자
관리자

공감과 존중하는 삶

2015920일 맑은샘교회 주일예배 박철규 목사

성경 막2:23~28

2:23 안식일에 예수께서 밀밭 사이로 지나가실새 그의 제자들이 길을 열며 이삭을 자르니

2:24 바리새인들이 예수께 말하되 보시오 저들이 어찌하여 안식일에 하지 못할 일을 하나이까

2:25 예수께서 이르시되 다윗이 자기와 및 함께 한 자들이 먹을 것이 없어 시장할 때에 한 일을

읽지 못하였느냐

2:26 그가 아비아달 대제사장 때에 하나님의 전에 들어가서 제사장 외에는 먹어서는 안 되는

진설병을 먹고 함께 한 자들에게도 주지 아니하였느냐

2:27 또 이르시되 안식일이 사람을 위하여 있는 것이요 사람이 안식일을 위하여 있는 것이 아니니

2:28 이러므로 인자는 안식일에도 주인이니라

 

어느 여론기관에서 1000명을 대상으로 마음의 온도를 조사하였습니다.아마도 20-50도 정도는

될 것이라 생각하고 조사를 하였는데 결과치를 보니 평균이 영하 14도 였습니다.

그 중에 가장 추운 사람은 영하 24.2도를 기록한 대학 4학년생이었습니다.

장기적 불황과 취업에 대한 불안이 겹쳐 마음의 온도가 내려간 것 같습니다.

앞으로 살기가 좋아질 것인가 하고 물어니 71.9%가 점점 추워질 것이다 라고 답했습니다.
조사를 한 서강대 커뮤니케이션 담당 교수가 리포트를 작성하면서 첨언하기를

이처럼 마음의 온도가 내려가 있지만 가장 따뜻한 마음을 가질려면 우리 모두가 남을

배려하는 삶을 살아야 한다 라고 했습니다.

배려하는 삶을 살기 위해서는 서로 다른 것에 대하여 이해하고 공감하는 것이 가장 중요하고

또 남을 존중히 여기는 것이 그 다음으로 중요합니다.

당신의 마음의 온도는 몇도라고 생각합니까?

동료와 가족과 같이 꽁꽁 얼어 붙어 있지는 않습니까?

동토와 같이 굳어져 있고 차갑게 얼어붙어 남을 돌아보지 못하고 있다면

이 시간 주의 음성을 듣고 얼어붙은 마음이 녹아 생명의 기운으로 거듭나기를 바랍니다.

주님 은혜를 내려 주시옵소서 우리의 마음을 어루만져 따뜻한 마음으로 녹여 주시옵소서

 

본문은 안식일에 일어난 사건을 기록한 내용입니다.

안식일에 복음을 전하고 시장한 상태에서 밀밭 사이 길로 지나면서 제자들이 밀 이삭을

짤라 먹은 것에 대하여 바리새인들이 태클을 거는 내용입니다.

바리새인들이 호시탐탐 예수님을 시비 걸어 넘어뜨리려고 따라 다니면서

오늘 안식일에 밀 이삭을 먹은 제자들에게 안식일에 하지 못할 일을 왜 합니까?

예수님이 다윗의 이야기를 들어서 말하고 있습니다. (삼상)

다윗이 사울을 피하여 도망시 제사장이 먹는 떡을 먹었는데 정죄 받지 않았다

안식일의 주인은 예수님 자신입니다.

사람이 안식일을 위하여 있는 것이 아니고 안식일이 사람을 위하여 있는 것이라고 말하면서

사람을 살리는 일을 안식일에 하는 것이 잘못이 없다는 주님의 말씀입니다.

교회는 생명을 살리는 곳입니다. 기독교의 중심은 생명입니다.

규칙이나 율법은 인간이 바르게 살기 위하여 주신 것입니다.

규칙은 지켜지지 않아도 결코 그 생명을 버리지 않습니다.

윤리나 도덕은 사람의 생명을 살리는 것이 아닙니다. 바르게 살게 하는 수단이기는 합니다.

하나님의 말씀이 우리의 생명을 살립니다. 성경은 복음이 곧 생명이라고 말합니다.

복음이란 예수님의 성육신에서 십자가로 우리의 죄를 대속하고 부활 승천하셔서 성령을 보내주시고

우리로 예수님을 구주로 믿게 하는 것이 복음입니다.

예수를 믿어 소망을 가지고 살다가 때가 되면 주님의 나라 천국에 가는 것이 복음입니다.

복음의 과정을 아는 것이 대단히 중요한 것은 맞습니다. 그러나 아는 것보다

현실적으로 중요한 것은 공감입니다.복음을 공감하는 것입니다.

머리는 이해가 되지만 공감의 가슴이 통하지 않으면 그 신앙은 아무것도 아닙니다.

오늘 제자들은 하루 종일 복음을 전하는 예수님과 동행하여 몹시 배가 고팠습니다.

제자들의 배고픔을 공감해야 합니다.

딱딱한 규정이나 법조문보다 중요한 것은 공감입니다. 공감의 능력이 중요합니다.

 

오늘날 폭력이 난무하는 시대에 우리는 살아갑니다. 끔찍한 폭력이 가정에서부터 사회전반에

걸쳐 행해 지고 있습니다. 가장 무서운 폭력은 물리적인 폭력보다 더 고통스러운 언어폭력입니다

욥의 환란시 욥기 213절까지는 친구들이 말하지 않고 칠일 밤낮으로 가까이 있을 때에

그에게는 큰 위로가 되었지만 이후 말하기 시작하면서 오히려 욥에게는 상처가 가중되었습니다.

참된 위로는 많은 말로 위로하기 보다 조용히 손 잡고 쳐다만 보는 것으로도

위로가 됩니다. 침묵이 얼마나 큰 위로가 되는지 모릅니다.

사람의 모습은 말로 표현하는 것보다 가슴으로 느끼는 것이 중요합니다.

처지를 공감하고 상대방을 배려하고 남을 존중하고 사랑하는 것이 중요합니다.

성 프란체스의 글 중에 그가 제자들과 금식을 하고 있었는데 어느 날 제자들과 같이

시장을 거닐다가 제자들이 너무 배고파 시장에 파는 죽을 사서 먹는 일이 발생했습니다.

프란체스는 제자들을 꾸짖지 않고 죽을 파는 곳에 이르러 아무런 말도 없이 죽을 사서 그 자리에서

두 그릇이나 먹고 말았습니다. 제자들이 배고파 먹은 것을 꾸짖지 않고 공감한 것입니다.

 

병원에서 외과의가 사람을 수술할 때 메스로 피부를 가르고 내부 장기를 수술하고 바깥 피부를

다시 봉합하는 수술을 해야 그 수술이 마쳐지는 것입니다.

피부를 째는 수술과 봉합하는 수술이 중요한 데 바리새인들은 율법에 의한 정죄는 하지만

새로운 살이 돋아나도록 하는 봉합은 하지 않습니다.

복음은 공감하고 품어 주는 것이 되어야 합니다.

공감하지 않으려고 하니 언어 폭력이 나오게 되는 것입니다.

병원 입구에 병문안을 온 네 사람의 모습을 보았습니다. 그런데 커피숍에서 네 사람이 앉아

다 같이 서로 말하기 시작했습니다. 누구하나 듣는 사람이 없이 말만 하였습니다.

이것은 공감이 사라진 말만 난무하는 폭력과 같아 보였습니다.

상대방의 아픔을 나의 아픔으로 생각하는 것이 병원에서 공감입니다.

상대방의 처지와 형편을 나도 같이 느끼고 동조하는 것을 공감이라고 하며 이런 신앙을

공동체 신앙이라 합니다

12:15 즐거워하는 자들과 함께 즐거워하고 우는 자들과 함께 울라

누가복음에서 탕자 비유에서 집에 남아 있던 큰 아들은 아버지의 마음을 이해하지 못햇습니다.

공감하지 못했습니다. 그의 마음은 갈라진 마음을 가지고 있었습니다.

 

믿음은 공감하는 것입니다.

공감하지 못하고 살아 가는 것은 마네킹으로 살아가는 것과 같습니다. 자기만 잘 보이려고 ....

은혜의 복음은 같이 아파하고 같이 체휼하는 것입니다.

바리새인은 불공감하는 사람들입니다.

 

공감하는 것만큼 중요한 것이 남을 존중하는 것입니다.

바리새인들은 율법을 스스로 잘 준수한다고 생각하면서 예수님을 무시하고

조롱하고 비아냥 거렸습니다.

세상을 살아가면서 존중이 없으면 아름다운 삶을 살지 못합니다.

모든 인간관계도 서로 존종하는 것에서 출발합니다.

부모,선생님을 존중해야 합니다. 어린아이의 인격도 존중하고 거지의 인격도 존중해야 합니다.

마더 테레샤의 고백처럼 고쳐주고 도와 주는 것 때문에 헌신 한 것이 아니고

저들 한 사람 한 사람의 인격을 귀하게 여기고 존중하기 때문에 헌신한다고 했습니다.

다른 사람의 인격의 존중이 최고로 중요합니다.

야고보서에는 3:10 입에서 저주가 나오는도다 내 형제들아 이것이 마땅하지 아니하니라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말씀의 은혜의 강물이 흘러 여러분의 마음을 적시고 여러분의 영혼을 살리기를 바랍니다.

여러분은 머리의 신앙이 아닌 가슴의 신앙이 되어

남을 긍휼히 여기고 남을 존중히 여기고 남의 처지를 공감하는 신앙을 가지시기를 바랍니다.

공감과 존중을 통하여 여러분의 신앙이 성숙하기를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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