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20180204 박철규 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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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관리자 댓글 0건 조회 1,805회 작성일 18-02-06 10:42본문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2018년 2월 04일 박철규 목사
본문 행3:1~10
3:6 베드로가 이르되 은과 금은 내게 없거니와 내게 있는 이것을 네게 주노니 나사렛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일어나 걸으라 하고
지난해 영국의 메이 총리가 특별한 장관을 임명했습니다. 그것은 국민의 외로움을 달래는 장관입니다
우리나라도 노인 5명 중 1명 이상이 외로움을 느낀다고 합니다.
외로움을 느끼면 치매의 전조가 되어 결국 고독한 여생을 보내게 됩니다.
외로움은 흡연자가 담배를 15개피 피우는 것 보다 더 나쁘다고 했습니다
외로움은 비만보다도 더 나쁜 건강의 적입니다.
현대사회 독버슷처럼 번지는 외로움(일명 고독)은 전염병처럼 파져가고 있습니다.
왜 살기 좋은 세상에 이처럼 무서운 정신적 질환이 우리를 괴롭히고 있습니까?
왜 외로움이 우리를 엄습합니까? 그것은 대화가 단절되었기 때문입니다.
누군가와 대화를 해야 하는데 대화가 단절되다 보니 자기 안에 갇혀 살게 되는 것입니다.
외로움이 다가오면 우리는 주님 앞에 나와 도움을 구해야 합니다.
참된 행복은 삶의 의미와 목적을 알고 살아가는 것입니다.
복의 근원은 하나님입니다. 하나님을 예배하고 살아가는 것이 행복한 삶입니다.
본문에 성전 미문에 앉아 구걸하는 40대 중년의 앉으뱅이 장애우가 나옵니다.
이 사람은 태어나면서부터 앉은뱅이로 걷지 못하는 장애를 가진 불행한 사람이었습니다.
성장하여 성전 미문에 앉아 구걸로 하루하루를 살아가는 사람입니다
오늘도 많은 사람들이 미문을 통하여 성전에 들어갔습니다.
베드로와 요한도 제 구시 기도를 드리기 위하여 성전에 들어가다가 매일 보는 구걸하는
장애우를 바라보게 되었습니다.
장애우는 혹시 베드로와 요한을 통하여 무엇을 얻을까 하여 손을 내밀고 전에처럼을
불쌍히 여겨 달라고 (우리말로 한 푼 주십시오 , 한 푼 적선하여 주십시오)할 때
베드로와 요한이 그를 보니 걸인도 무엇을 받을까 하여 손을 길게 내밀었습니다.
그런데 베드로와 요한은 나에게 은과 금은 없다. 다만 내게 있는 것 나사렛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일어나 걸어라. 하니 무엇을 받을 줄로 여기던 이 사람이 오히려 베드로의 말에 순종하여
말씀을 받아 들이니 그는 40년 만에 일어나 걷게 되었습니다.
이 상황에서 가장 놀란 사람이 누구라고 생각합니까 ? 장애를 치료 받은 사람,이니면 베드로입니까?
아마도 가장 크게 놀란 사람은 베드로 일 것입니다.
성전미문의 앉은뱅이가 일어나 성전에 걸어 들어가 찬미하는 이 사건은 초대교회의 가장
상징적인 사건입니다. 초대교회의 시작이 바로 이 사건으로부터 시작되기 때문입니다.
초대교회는 은과 금이 없고 오직 나사렛 예수 스리스도의 이름만 있었습니다.
그런데 현대교회는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보다 오히려 은과 금이 더 많아 주님의 역사가
일어나지 않습니다.
예수 이름으로 역사가 일어나는 곳이 교회입니다.
교회는 생명의 역사가 날마다 일어나야 합니다.
대한민국 초대 정부의 문교부 장관을 역임한 백낙준 박사 이야기입니다.
그는 무당의 아들로 태어나 선교사님을 만나 미국에 유학하고 예일대학에서 학위를 받았습니다.
그가 예일대학에 학위논문에 작성하기를 교회에는 두 부류의 교인이 있다 라고 했습니다.
하나는 개화교인이고 다른 하나는 예수 믿는 교인이라고 했습니다.
개화교인은 교회를 통하여 문화와 문명을 깨우치고 그것으로 행복의 길을 가는 사람이라고 했습니다
박사는 말하기를 교회는
예수 그리스도의 생명의 역사에 동참하여 나아가야 한다 라고 했습니다.
교회는 머리되시는 주님을 중심으로 구성된 지체입니다.
성도는 머리가 아니고 몸된 지체입니다.
그리스도인이 핍박을 받는 것은 곧 예수님이 핍박을 받는 것입니다.
살아 있는 교회는 주의 이름을 부르는 교회입니다.
교회에서 전하는 말씀이 주님의 이름을 전하는 말씀이어야 합니다.
예수님의 이름이 불려지는 순간 기적은 일어납니다.
우리 인생에 내가 무엇을 할 수 있는 일이 많지 않음을 깨닫습니다.
성도가 할 수 있는 일은 기도가 최선입니다.
절망에서 일어나는 길은 기도외에는 없습니다.
기도할 때 예수님이 개입하여 역사를 일으키는 것입니다.
예수 이름으로 일어나라 이것이 기적입니다.
기적은 갑자기 하늘에서 떨어지는 것이 아닙니다.
사람을 통하여 나타납니다. 본문에는 베드로를 통하여 역사가 나타났습니다.
베드로의 인생은 파란만장합니다. 굴곡이 심합니다.
신앙고백으로 칭찬을 듣기도 했지만 주님의 십자가 길에서 예수님을 세 번 부인했습니다.
인간적으로 위대하기도 하지만 참으로 부족한 사람이었습니다.
이런 사람이 오늘 나사렛 예수의 이름으로 일어나 걸어가라 하니 기적이 일어난 것을 보면
초대 교회 지도자로서 큰 담력을 갇게 된 계기가 됩니다.
지금 우리가 붙들어야 하는 것은 오직 예수의 이름입니다. 예수의 이름 하나 밖에 없습니다.
예수 그리스도를 전하던 초대교회에는 어느 곳에서든지 핍박이 있었습니다.
지금도 마찬가지입니다. 참된 생명의 복음 예수 그리스도가 증거 되는 곳에는 핍박이 일어납니다.
사도행전 1장은 예수님의 부활 후 승천하면서 땅끝까지 복음을 전하라
(복음서에서 명한 것을 다시한번 환기시킵니다)
오직 성령이 너희에게 임하시면 너희가 권능을 받고 예루살렘과 온 유대와 사마리아와 땅 끝까지 이르러 내 증인이 되리라 하시니라 (행1:8)
사도행전 2장은 성령이 마가의 다락방에 기도하는 제자들에게 불의 혀같이 임하였습니다.
성령의 능력이 임한 것입니다.
사도행전 3장은 성령충만을 체험한 사도들이 예수 그리스도의 능력으로 이사와 기적을 행하며 담대히
십자가와 부활의 복음을 증거하였습니다. 특히 3장에는 베드로와 요한이 제구시 기도를 하기 위하여
성전에 들어갈 때 나면서부터 앉은뱅이로 태어나 미문에 앉아 구걸하던 사람에게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일어나 걸어가라 하니 그가 일어나 걸어가는 이적이 나타났습니다.
복음의 능력이 임하니 나사렛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을 그에게 주니 그가 일어나 걸어가게 된 것입니다.
사람들이 베드로를 칭찬하니 베드로가 일어나
백성에게 말하되 이스라엘 사람들아 이 일을 왜 놀랍게 여기느냐 우리 개인의 권능과 경건으로 이 사람을 걷게 한 것처럼 왜 우리를 주목하느냐 ?
그 이름이 너희가 보고 아는 이 사람을 성하게 하였나니 예수로 말미암아 난 믿음이 너희 모든 사람
앞에서 이같이 완전히 낫게 하였느니라
내가 한 것이 아니고 주님이 하셨다 하고 설교를 하니 하루에 3000명이나 회개하며 예수님을 믿었습니다
서기관, 바리새인들이 너희들이 무슨 권세로 이렇게 하느냐 하면서 저들을 잡아 감옥에 가두었습니다.
베드로는 고치신이는 우리가 아니고 주님이시다 라고 분명하고 담대히 말합니다.
베드로는 저들에게 말합니다
너희와 모든 이스라엘 백성들은 알라 너희가 십자가에 못 박고 하나님이 죽은 자 가운데서 살리신 나사렛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이 사람이 건강하게 되어 너희 앞에 섰느니라 .(행4:10)
본문에서 유심히 보아야 할 것은 나사렛이라는 지역명입니다.
나사렛은 당시 유대사회에서 무시되는 초라한 시골마을입니다.
중요한 것은 나사렛 사람 예수 그리스도가 병을 고쳤다고 하였습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성령이 충만하니 예수의 이름으로 귀신을 쫓아내고
예수의 이름으로 구원을 받고
예수의 이름으로 죄짐을 벗고
예수님을 영접하면 하나님의 자녀가 되는 권세를 주십니다.
우리가 알아야 하는 것은 예수님의 이름으로 하는 기도는 능력이 나타나고 기적이 나타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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