만져주심(20160626 박철규 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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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관리자 댓글 0건 조회 2,039회 작성일 16-07-01 13:27본문
만져주심
2016년 6월 26일 박철규 목사
본문 요9:1~7
9:1 예수께서 길을 가실 때에 날 때부터 맹인 된 사람을 보신지라
9:2 제자들이 물어 이르되 랍비여 이 사람이 맹인으로 난 것이 누구의 죄로 인함이니이까 자기니이까
그의 부모니이까
9:3 예수께서 대답하시되 이 사람이나 그 부모의 죄로 인한 것이 아니라 그에게서 하나님이 하시는
일을 나타내고자 하심이라
9:4 때가 아직 낮이매 나를 보내신 이의 일을 우리가 하여야 하리라 밤이 오리니 그 때는 아무도
일할 수 없느니라
9:5 내가 세상에 있는 동안에는 세상의 빛이로라
9:6 이 말씀을 하시고 땅에 침을 뱉어 진흙을 이겨 그의 눈에 바르시고
9:7 이르시되 실로암 못에 가서 씻으라 하시니 (실로암은 번역하면 보냄을 받았다는 뜻이라)
이에 가서 씻고 밝은 눈으로 왔더라
인생은 누구나 문제를 안고 살아 갑니다. 큰 문제, 작은 문제를 안고 살아 갑니다.
문제 없이 살아가는 사람은 없습니다.훗날 하나님을 만나면 우리는 질문하고 싶은 것이 많습니다.
하나님 요즈음 참으로 먹고 살기 힘이 듭니다.
하나님 왜 나를 이 땅에 태어나게 하였습니까?
하나님 왜 제게 병을 주어 이 고통 가운데 살게 합니까?
아마도 하나님의 답은 사람마다 다르고 상황에 따라 다를 것입니다.
오늘 본문에 태어날 때부터 맹인이 사람을 두고 제자들이 예수님에게 질문하고 있습니다.
요한복음에는 주님의 기적이 7가지가 기록되어 있습니다. 그 중에 하나가 본문에 나오는 맹인을
고쳐 주는 이야기입니다.(여섯번째 기적)
이 메시지가 우리에게 주는 교훈이 있습니다. 이 맹인은 태어나면서 맹인이었고 앞을 보지 못하엿습니다
그는 성장하면서 거지로 구걸을 하면서 살았습니다. 참으로 딱한 인생이었습니다.
그에게 부모, 형제, 친척이 있었지만 아마도 그가 자란 후에 갖다 버린 것 같습니다.
누군가 예수님에게 질문하여 .
당신의 불행을 “죄”이라고 몰아붙이고 인과응보로 몰아간다면 당신은 무엇이라고 말하겠습니까?
흔히들 지은 죄 때문에 불행해진다는 생각을 하고 있습니다.
동방의 의인 욥은 죄 때문에 아들을 잃고 재산을 잃고 병마에 신음하였습니까?
욥의 세 친구는 그런 각도에서 욥을 정죄하고 욥을 몰아 부쳤습니다.
그러나 오늘 예수님이 우리에게 주신 말씀은 본문 3절에
이 사람이나 그 부모의 죄로 인한 것이 아니라 그에게서 하나님이 하시는 일을 나타내고자 하심이라
예수님은 결과로 나타나는 현상을 가지고 정죄하지 않았습니다.
하나님이 아시는 일을 나타내고자 함이라 말하였습니다.
고통과 아픔을 통하여 하나님의 빛이 더욱 필요합니다. 하나님의 은혜가 더욱 간절합니다.
맹인을 고쳐 주시고 또 다른 맹인들을 고쳐 주시는 것입니다.
이것은 사람을 위함이 아니고 하나님의 일을 나타내기 위함입니다.
부모의 죄도 아니고 나의 죄도 아닙니다.
우리 주님은 과거보다도 미래에 대해서 말하고 있습니다.
모든 문제는 주님을 만나면 해결이 됩니다.
내가 만난 주님을 다른 사람에게 소개시켜 주므로 생명을 나누게 되고 용기를 나누게 됩니다.
영원한 소망을 나누게 됩니다.
우리는 영적으로 맹인입니다.
인간의 능력으로는 앞을 보지 못합니다. 한 치 앞에 어떤 일이 일어날지 모릅니다.
매일 매일 맹인/걸인처럼 그 자리에서 구걸하면서 살게 되는 것입니다.
우린 인생이 생명의 빛되신 예수님을 만나야 빛을 보게 되고 생명의 눈을 뜨게 되는 것입니다.
생명의 빛 되신 예수님을 만나야 합니다.
예수님을 만나면 내 속에 어둠이 물러가고 빛이 들어오게 됩니다. 불안이 떠나갑니다.
이제는 내가 홀로 사는 것이 아니고 내 안에 생명의 주인이신 예수님이 영으로 들어와 함께 하는
것입니다. 예수님은 치유하시고 우리를 영적으로 풍성케 해 주십니다.
예수 안에 소망이 있고, 기쁨이 있습니다. 만나주시고 만져 주시는 주님은
첫째 예수님이 우리를 먼저 찾아오십니다.(9:1)
예수님은 예배하는 성도들에게 찾아오십니다.
내가 예수님을 부르는 것이 아니고 예수님이 우리를 call하고 있습니다.
삭개오에게 예수님을 삭개오야 나무에서 내려 오너라 했습니다.
먼저 찾아오니시는 주님입니다.
주님이 우리를 부르시고 우리는 그 부름에 응답해야 합니다. 부르심과 응답이 바로 사역입니다.
구원은 내가 찾아 가는 것이 아니고 주님의 부름에 내가 응답하는 것입니다.
말씀이 육신이 되어 먼저 다가 오시는 것입니다. 그 주님을 영접해야 합니다.
계3:20절에 주님은 우리의 마음의 문을 두드리고 있습니다. 문을 열어 주는 자에게 주님은 들어가
함께 하겠다고 하였습니다.
오병이어의 기적을 베푸시고 주님은 산으로 올라 기도하였습니다.
제자들은 밤에 배타고 갈릴리 바다를 건너가고 있었습니다. 이 때 풍랑을 만났습니다.
주님은 제자들의 허우적거리는 모습을 보고 바다위를 걸어서 제자들에게 다가갔습니다.
막6:48절에 바다를 꾸짓고 풍랑을 꾸짖어 바다를 잠잠하게 했습니다.
무거운 짐을 지고 나홀로 견디다 못해 쓰러질 때 주님은 다가와 조용히 나를 붙잡아 주시고
일으켜 세워 주십니다.
오늘 여러분의 인생이 캄캄한 밤을 만아 돗단배처럼 요동치고 있습니까?
물 위를 걸어오시는 주님을 손을 내밀을 구원을 청하십시오
주님은 임마누엘의 주님입니다. 지금도 나를 위하여 누군가 기도하고 있습니다. 아니 우리 주님이
나를 위하여 기도하고 있습니다.
그 주님이 지금 나를 찾아 오셔서 만져 주십니다.
주님이 만져 주시면 우리는 회복이 됩니다. 경제가 회복되고, 사회가 회복되고 우리 가정이 회복되고
내 신앙이 회복되고 우리교회가 회복되는 것입니다.
본문 6절에 주님은 침을 뱉어서 그를 고쳐 주십니다. 주석가 벵겔은 이 부분을 이렇게 해석했습니다
예수님의 창조의 능력을 보여 주시길 위해 이런 방법을 사용했다 하였습니다.
우리 인생은 창조주 하나님을 믿어야 하고 그 창조주 주님이 우리를 터치하시면 우리는 새로운
역사를 나타내게 됩니다. 지금 주님의 능력이 이시간 여러분에게 나타나기를 바랍니다
맹인을 근원적으로 치료해 주십니다.
실로암으로 가라는 말씀에 맹인은 철저히 순종했습니다.
맹인은 눈을 뜨고 기적을 체험하게 되었습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순종의 현장에 여러분은 가야 합니다.
보냄을 받은 그 자리까지 가라
말씀을 믿고 말씀을 붙잡고 가라 여러분이 받은 달란트로 주님의 부르심에 응하고 가야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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