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난속의 사랑(20140501 옥포중앙교회 박보준 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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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관리자 댓글 0건 조회 2,310회 작성일 14-05-01 09:38본문
고난속의 사랑
2014년 5월 01일 옥포중앙교회 박보준 목사
마9:1-8
9:1 예수께서 배에 오르사 건너가 본 동네에 이르시니
9:2 침상에 누운 중풍병자를 사람들이 데리고 오거늘 예수께서 그들의 믿음을 보시고 중풍병자에게
이르시되 작은 자야 안심하라 네 죄 사함을 받았느니라
9:3 어떤 서기관들이 속으로 이르되 이 사람이 신성을 모독하도다
9:4 예수께서 그 생각을 아시고 이르시되 너희가 어찌하여 마음에 악한 생각을 하느냐
9:5 네 죄 사함을 받았느니라 하는 말과 일어나 걸어가라 하는 말 중에 어느 것이 쉽겠느냐
9:6 그러나 인자가 세상에서 죄를 사하는 권능이 있는 줄을 너희로 알게 하려 하노라 하시고
중풍병자에게 말씀하시되 일어나 네 침상을 가지고 집으로 가라 하시니
9:7 그가 일어나 집으로 돌아가거늘
9:8 무리가 보고 두려워하며 이런 권능을 사람에게 주신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니라
오늘 본문은 예수님의 대표적인 치유사건입니다.
갈릴리 지역에서 가장 많이 복음을 전한 곳이 가버나움입니다.
가버나움의 한 중풍병자를 그의 친구들이 침상에 누운채 들고 나와 예수님께 치유를 받은 것입니다.
2절에 보니 중풍병자는 움직이지 못하여 침상에 누워 있었습니다.
친구들이 중풍병자를 침상채 들고 예수님께 나아왔습니다.
예수님은 본문 2절에서 중풍병자를 작은 자야 라고 불렀습니다.
오늘날 우리가 살아가는 시대에 작은 자가 많습니다.
도움을 받아야 하는 어린아이,그리고 병상에서 도움을 받아야 하는 환자 등이 본문에서 말하는
작은 자입니다. 중풍병자는 예수님께 고침을 받고 일어나 집으로 돌아갔습니다.
본문의 치유사건을 보면서 우리는 놀라운 영적 진리를 발견하게 됩니다
첫째는 중풍병자 친구들의 사랑입니다.
예수님 병고침의 소문을 듣고 중풍병에 걸린 친구를 침상채로 들고 나왔지만 많은 장애물이
앞을 막고 있었습니다. 사람들이 많이 모여 도저히 예수님 앞으로 나아갈 수 없었습니다.
그들은 예수님이 말씀을 전할 때 집의 지붕 위에 올라가 주인의 허락도 받지 않고
지붕을 뚫고 중풍병자를 침상채로 아래로 내렸습니다.
사람들이 수군거렸을 것입니다. 기와장이 위에서 떨어지는 소리가 나고
갑자기 위에서 침상이 내려오니 사람들이 비난했을 것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친구들은 중풍병자를 내려 보낸 것입니다.
우리말에 지성이면 감천이란 속담이 있듯이 예수님도 저들의 모습에 감동이 되었습니다.
친구들의 사랑은 지극했습니다. 친구를 내 몸처럼 사랑하고 섬긴 것입니다.
장애는 눈에 보이는 장애가 있고 (소경, 절뚝발이, 소아마비, 중풍,등)
눈에 보이지 않는 장애도 있습니다.(육신은 멀쩡한대 정신적 장애를 가진 자)
본문의 내용은 친구들의 섬김을 통한 사랑에 예수님이 그들의 믿음을 보고 병고쳐 주신 것입니다.
맑은샘 병원도 의사와 간호사 그리고 직원들이 환자들을 지극한 사랑으로 섬기면
병고침의 큰 역사가 날마다 일어날 것입니다.
둘째는 병보다 앞선 죄의 문제를 해결한 것입니다.
많은 사람들이 생각하기로 중풍병자에게 우선적으로 해결해야 할 것은 육신의 질병의 치유라고
생각합니다. 오늘날 대부분의 환자들도 병원을 찾아 고침을 받으려는 것은 육신의 질병입니다.
그러나 예수님은 죄의 문제를 우선 말했습니다.
9:2 예수께서 그들의 믿음을 보시고 중풍병자에게 이르시되 작은 자야 안심하라
네 죄 사함을 받았느니라
중풍병자의 실제적 고침은 6절에 기록되어 있습니다.
9:6 그러나 인자가 세상에서 죄를 사하는 권능이 있는 줄을 너희로 알게 하려 하노라 하시고
중풍병자에게 말씀하시되 일어나 네 침상을 가지고 집으로 가라 하시니
오늘 중풍병자를 고쳐주고 예수님은 신성모독죄로 서기관들에게 고발을 당합니다.
왜 예수님은 중풍병자를 그냥 고쳐주지 않고 “죄”문제를 먼저 말하여 고난의 길을 걸어 가셨습니까?
그것은 예수님이 우리에게 가르쳐 준 내용대로 사랑은 믿음으로 해결된다 는 것입니다.
복음서에서 병고침의 역사는 당사자의 믿음을 보고 고쳐 주셨습니다.
그러나 오늘 중풍병자의 병고침 사건은 그렇지 않습니다.
중풍병자의 믿음이 전혀 언급되어 있지 않습니다.
중풍병자의 병고침은 중보기도의 대표적인 사례로 적용이 되고 있습니다.
신앙의 원리는 본인의 믿음의 고백과 간구가 중요하지만 예외적으로 주님은 중보의 기도의
중요성도 강조하고 있습니다.
다른사람이 기도해도 역사는 일어납니다.
주님이 그들의 믿음을(친구들) 보시고 치료해 주신 것입니다.
9:2 침상에 누운 중풍병자를 사람들이 데리고 오거늘 예수께서 그들의 믿음을 보시고
친구들의 믿음은 아픈 중풍병자 친구를 예수님께 데려가면 고침을 받을 수 있다는 믿음입니다.
오늘 본문을 보면서
맑은샘 병원도 이런 병고침의 역사가 일어나기를 바랍니다.
환자는 아픈 사람입니다. 육신이 아프면 모든 신경조직이 날카로워집니다.
조그만 일에도 짜증을 내고 불평을 하기도 합니다.
정서적으로 몹시 불안정한 상태를 유지합니다.
어린아이와 같은 상태로 자기만 알게 됩니다.
우리는 저들을 사랑으로 대하고 사랑으로 치료하고 사랑으로 안내합니다. 그러다 어느시점에
나도 모르게 사랑이 습관이 되어 믿음이 없이 인간적 수고만 반복하는 메널리즘에 빠지게
됩니다.
사랑하는 직원 여러분
믿음을 가지고 사랑의 수고를 하면 주님이 우리의 방전된 영적 에너지를 날마다 채워 주십니다
맑은샘병원이 하나님의 사랑을 가지고 지역을 섬긴다는 것은 참으로 귀한 역사입니다.
죽어가는 생명을 살리는 기독병원으로 하나님께 영광을 올려 드려야 합니다.
주님의 귀한 사랑을 가지고 환우들을 섬기면 하나님께서 놀라운 역사를 일으켜 주실 것입니다.
오늘도 하나님이 함께 하는 병원이 되기를 기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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