참된 위로자는 누구인가?(20150607 박철규 목사)

작성일
15-06-08 07:39
조회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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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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참된 위로자는 누구인가?

2015608일 맑은샘 주일예배 박철규 목사

성경 욥2:7-13

2:7 사탄이 이에 여호와 앞에서 물러가서 욥을 쳐서 그의 발바닥에서 정수리까지 종기가 나게 한지라

2:8 욥이 재 가운데 앉아서 질그릇 조각을 가져다가 몸을 긁고 있더니

2:9 그의 아내가 그에게 이르되 당신이 그래도 자기의 온전함을 굳게 지키느냐 하나님을 욕하고 죽으라

2:10 그가 이르되 그대의 말이 한 어리석은 여자의 말 같도다 우리가 하나님께 복을 받았은즉 화도

받지 아니하겠느냐 하고 이 모든 일에 욥이 입술로 범죄하지 아니하니라

2:11 그 때에 욥의 친구 세 사람이 이 모든 재앙이 그에게 내렸다 함을 듣고 각각 자기 지역에서부터 이르렀으니 곧 데만 사람 엘리바스와 수아 사람 빌닷과 나아마 사람 소발이라 그들이 욥을

위문하고 위로하려 하여 서로 약속하고 오더니

2:12 눈을 들어 멀리 보매 그가 욥인 줄 알기 어렵게 되었으므로 그들이 일제히 소리 질러 울며

각각 자기의 겉옷을 찢고 하늘을 향하여 티끌을 날려 자기 머리에 뿌리고

2:13 밤낮 칠 일 동안 그와 함께 땅에 앉았으나 욥의 고통이 심함을 보므로 그에게 한마디도

말하는 자가 없었더라

 

메르스 바이러스로 인하여 국가와 온 국민이 불안해 하고 걱정을 합니다.

바이러스는 세균보다 적은 미생물입니다.

면역이 건강한 사람과 몸에 항체가 있는 사람은 바이러스를 이길 수 있습니다.

메르스 바이러스가 생긴 배경은 인간이 순리를 버리고 역리로 살았기 때문입니다

하나님께서 바이러스를 허락했다면 하나님께서 바이러스를 이길 면역증강과 항체를 주실 것입니다.

우리에게 엄청난 고난이 닥친다면 우리는 그것을 인간적으로 해결할려고 하지 말고

하나님 앞에 나아가야 합니다.

인생에는 반드시 고난이 있습니다.고난의 골짜기에서 하나님께 간구하면 하나님은 반드시

은혜로 우리를 고난의 구렁텅이에서 건져 주십니다.

고난의 원인은 대부분이 사람에게서 옵니다. 간혹 자연의 재앙으로 오기도 합니다.

고난의 영향을 극복하는 방법을 사람으로부터 찾을려고 합니다.

 

본문의 욥이 당한 고난을 보고 두 부류의 사람들이 말하는 것이 등장합니다.

첫째는 욥의 친구들이 찾아와 위로하는 모습이고

두 번째는 욥의 아내가 욥에게 말하는 내용입니다.

아픈 사람이나 고난을 당한 사람에게는 위로가 필요합니다.

위로한다는 말은 돌본다, 함께 있어준다 는 뜻이 담겨 있습니다.

고난 당한 사람에게 아무 말없이 같이 있어 주는 것이 큰 위로입니다.

어느 고난당한 가정에 친구가 위로차 찾아가 조용히 손을 잡아주고

그 다음날 조용히 그 집을 찾아가 반찬을 하여 식탁에 올려두고 그냥 갑니다.

그리고 작은 메시지로 하나님이 분명히 도와 주실 것입니다. 쪽지를 남기었습니다.

몸이 많이 아파 병원에 입원한 친구(성도)를 병문안차 방문하였다면 조용히 아무말도 하지 말고

손을 꼭 잡아 주는 것이 위로입니다.

병원심방을 한다고 하여 떠들썩하게 찾아와서 소리내어 기도하는 것보다

아무 소리도 내지 않고 조용히 손을 잡아 주는 것이 오히려 큰 위로가 됩니다.

부모가 돌아가 탈상을 하고 힘을 잃어 기운이 없을 때 찾아온 친구가 조용히 손 잡아 주는 것이

참 위로가 됩니다.

많은 사람들이 고난을 당하면 찾아가서 자기의 지식으로 자기의 경험으로 아픔을 가진

사람에게 설명할려고 합니다.

그러나 본문을 보면 욥의 세 친구는 처음 7일 동안 아무말도 하지 않고 같이 울어 주었습니다.

욥에게는 큰 위로가 되었습니다.(13)

그러나 욥의 친구들이 입을 열어 말하기 시작하면서 위로가 떠났습니다.오히려 상처가 가중되었습니다

우리도 우리의 약팍한 지식으로 병을 설명하고 위로한다고 하지는 않습니까?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병상에 찾아가 위문할 때는 환우의 손을 곡 잡고 힘내세요 하고는 그냥 오는 것이 좋습니다.

 

많은 사람들이 고난을 당합니다. 본문의 욥처럼 말입니다.

고난 당할 때 특징은 이해관계에 따라 사람들이 썰물처럼 이동 합니다.

본문에서 욥은 하나님이 인정하는 의인으로 살았습니다, 그런데 그가 고난을 당하니

아무도 그를 찾아와 참 위로를 하는 자가 없었습니다.(세 친구들 빼고)

그렇습니다, 사람들은 이해관계를 따라 움직입니다.

그러나 우리 주님은 찬송가 88장의 가사처럼 온 세상 날버려도 주 예수 안버려 끝가지 나를 돌아보시니

예수님은 고난 당하는 우리를 떠나지 않습니다.

시인은 고난이 우리에게 유익이라고 노래했습니다.(119:71)

그것은 고난으로 말미암아 주의 율례를 깨닫게 되기 때문입니다.

고난 당하는 자를 돕는 것은 꼭 물질이나 그 이상의 것으로 돕는다는 의미가 아니고

기도로 도울 수 있습니다. 환우의 휠체어를 조용히 밀어주는 것도 도와 주는 것입니다.

많은 사람들이 사람들에게서 위로를 받지 못하고 반려동무인 애완견을 통하여 위로를 얻으려고 합니다.

집에서 개를 키우는 것은 사람들이 자기에게서 떠나 가기 때문입니다.

개는 정을 주면 절대로 떠나가지 않습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외로울 때 고통스러울 때 도와 주는 믿음의 사람이 되기를 바랍니다.

지금 여러분 앞에 다가오는 약한 사람이 바로 예수님입니다. 그 분에게 물 한 그릇을 떠 주고

그분에게 조용히 휠체어를 밀어 주어야 합니다.

프리스 검프라는 미숙아가 (IQ 75) 일반학교에 입학했습니다.

그의 지능이 떨어져 아무도 옆자리에 앉으려고 하지 않았습니다. 우리시대 왕따와 같습니다.

그런데 제니라는 여자 친구가 옆자리에 앉아 친구가 되어 주었습니다. 항상 같이 다녔습니다.

교계에 존경받는 인명진 목사님이 지금부터 30년 전에 구로공단 산업선교를 할 때 많은 목사들이

그를 배척했습니다. 인목사의 철학은 절대 혼자 밥을 먹지 않는다입니다. 그러나 당시 노회에

속한 목사들이 인목사를 아무도 가까이 하지 않았습니다. 멀리 내다보지 못하고 근시안적인 사고로

목회를 하다보니 당시 사회운동이나 근로자에게 다가가는 것이 정부의 정책에 반하므로 빨갱이라고

매도하면서 함께 하지 않았습니디.

프리스 검프의 친구 제니가 세월이 지나면서 검프의 곁을 떠날려고 하였습니다.

이 때 검프가 한 말입니다. 구야 나는 똑똑하지 않지만 사랑하는 법을 알아 참 사랑은 함께

있어 주는 것이야?.....

예수님의 이름은 임마누엘입니다. 우리가 많이 듣던 모래위의 발자국이라는 동화를 잘 압니다.

해변에 발자국이 네 개 있다가 어느 순간 발자국이 두 개만 있어 주님에게 물었습니다.

그 때 주님이 하신 말씀입니다. 너가 고통 가운데 있을 때 내가 너를 업고 해변을 걸어 갔단다.

 

두 번째는 욥의 아내에 대하여 생각해 보겠습니다.

하루 아침에 재산을 잃고, 자녀를 잃고, 건강을 잃은 욥을 가까이서 지켜본 사람이 그의 아내입니다

요즈음 대상포진처럼 고통이 심한 피부병에 걸려 기와로 몸을 긁는 욥의 모습을 보고 서 있었던 아내입니다.

본문 9절은 크게 세가지로 해석하는 경향이 있습니다.

유대인적인 사고로 보는 욥의 아내와 기독교적인 사고로 보는 욥의 아내 더 나아가

무스림의 개념으로 보는 욥의 아내가 있습니다 다 각각의 해석이 다릅니다.

히브리어 어원으로 보면 하나님을 욕하고 죽어라는 말의 원문은 하나님을 찬양하고 죽어라 입니다.

어법강조체로 쓰여진 문구라서 결국 우리말 번역에서는 욕하고 죽어라 로 번역 했습니다.

번역상의 오류는 아닌 것 같습니다.

오늘 유대인적인 사고로 접근해 보면 그의 아내는 욥에게 당신이 당한 고난을 하나님 앞에 나아가

모든 것을 처리해라 라는 뜻으로 한 내용입니다.

욥의 세 친구는 자기의 지식과 경험과 철학으로 논쟁했지만 (3-37) 그것은 결국 인간적인

방법이었습니다. 변론하고 답을 하는 인간의 모습이었습니다.

그러나 욥의 아내는 욥에게 나아가 하나님 앞에 나아가라고 했습니다.‘

기독교적인 시각으로 욥의 아내가 사탄의 친구처럼 보이지만 (나쁘게 보이고 그렇게 해석함)

유대적인 시각으로 보면 당신이 당한 고난을 하나님 앞에 가져가 쏟아 부어라.

사람에게 의지하지 말고 사람의 방식으로 해결할려고 하지 말고 하나님 앞에 나아가라...

선지자 하박국은 불공평한 세상의 모습을 보고 불의한 사람이 잘 살고 의인이 고통당하는 것을

보며 하나님께 따져 항의했지만 하나님을 체험한 하박국이 의인은 믿음으로 살리라 고백하고

더 나아가 315절 이후에는 그리아니하실찌라도 ... 나는 여호와를 인하여 즐거워 하리라

어렵고 힘든 고난이 닥쳐오면 우리는 하나님 앞에 나아가야 합니다.

오직 여호와의 이름으로 정면돌파해야 합니다.

그리 하실 때 주님이 고난 가운데 있는 우리를 건져 주실 것입니다.

영화 러브스토리에서 명대사로 사랑하는 사람끼리는 미안하다 하면 안된다

하나님은 우리의 모든 것을 아시는 분입니다.

하나님 앞에 우리의 모습 그대로를 내려 놓아야 합니다.

쉬지 않고 사는 길은 하나님 앞에 사는 것입니다.

그러면 하나님은 우리에게 힘과 능력을 주실 것입니다.

 

 

결론으로 욥이 고난을 당하여 어려울 때 찾아온 사람들이 말없이 손을 잡고 울 때에는 위로가

되었지만 친구들이 변론하여 말하기 시작할 때는 위로가 떠나가고 논쟁이 시작되었습니다.

우리 모두는 하나님 앞에 가서 해결하는 참 신앙을 가지시길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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