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리마대 요셉의 믿음(20150412 박철규 목사) 1

작성일
15-04-13 07:52
조회수
2,293
작성자
관리자

아리마대 요셉의 믿음  1

2015412일 맑은샘 주일예배 박철규 목사

성경 막15:43

15:43 아리마대 사람 요셉이 와서 당돌히 빌라도에게 들어가 예수의 시체를 달라 하니 이 사람은

존경 받는 공회원이요 하나님의 나라를 기다리는 자라

 

오늘 본문에 나타나는 아리마대 사람 요셉은 당당한 믿음을 가진 사람입니다.

요셉은 영적으로 당당하고 존경받는 믿음의 사람이었습니다,

그는 오늘의 국회의원과 같은 공의회 의원이었습니다.

다른 복음서에 보면 요셉은

아리마대의 부자 요셉이라 하는 사람이 왔으니 그도 예수의 제자라 (마태)

그는 유대인의 동네 아리마대 사람이요 하나님의 나라를 기다리는 자라 (누가)

아리마대 사람 요셉은 예수의 제자이나 유대인이 두려워 그것을 숨기더니 이 일 후에 빌라도에게

예수의 시체를 가져가기를 구하매 빌라도가 허락하는지라 이에 가서 예수의 시체를 가져가니라.(요한)

예수님을 장사 지낼려고 빌라도에게 찾아가 시체를 달라고 당당히 말했습니다.

당시의 상황을 보면 위험부담을 안고 요구한 것입니다.

너도 한패이구나? 너도 나사렛 예수의 제자이구나? 소리를 들을 줄 알면서 요구한 것입니다.

잘못되면 자기의 신분이 박탈되고 나아가 생명을 잃을 수도 있었습니다.그런데도 당당히 나아갔습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예수 믿는 사람은 잘 될것이다. 예수 믿으면 부자 됩니다. 예수 잘 믿으면 대박 납니다.

정말로 예수 믿어 잘 되는 것이 믿음이라고 생각합니까? 그렇지 않습니다.

평안하고 평탄하여 순풍에 돛을 단 것처럼 모든 일이 술술 잘 풀리는 것이 신앙이 아닙니다.

오히려 진리를 말하고 정직하게 행하면 세상으로부터 억울하게 공격을 받는 일이 많습니다.

오늘 본문의 요셉은

당시 국민들로부터 존경받는 사람이었습니다.

하나님의 나라를 기다리는 믿음을 가진 제자였습니다.

예수님 십자가에 못박으라고 판결을 할 때 산헤드린 공의회 회원으로 반대표를 던졌습니다.

당시의 시대적 상황에서 보면 요셉은 잘못에 대하여 굴하지 않고 당당히 표현한 사람이었습니다.

절대다수의 군중심리가 예수님을 십자가에 못박으라고 빌라도에게 강요했습니다.

예수님은 빌라도가 판결한 대로 십자가에 못박혀 죽었습니다.

오늘 아리마대 사람 요셉이 빌라도에게 찾아가 당당하게 예수님의 시체를 요구한 것입니다.

 

본문의 당돌하다는 뜻은 거리낌이 없이, 혹은 어려움이 없이 라는 뜻입니다.

한국적 어감에는 당돌하다는 말이 달려든다는 생각을 하기 쉽지만

본문에 요셉은 목숨 걸고 용기 있게 예수님의 시체를 장사지네겠다고 요구한 것입니다.

당돌하다는 말은 당당하다는 뜻을 가지고 있습니다.

다니엘의 세 친구도 믿음으로 당당하게 신앙을 고백했습니다.그리아니하실찌라도....

신앙의 여장부 에스더도 죽으면 죽으리라 하며 나아갔습니다.

요셉이 당당하게 요구한 것은 죽어도 산다는 믿음을 가졌기 때문입니다.
부활신앙을 가진 자는 당당하고 정의롭고 바르게 살아야 합니다.

비굴한 신앙은 부활에 대한 신앙이 없기 때문에 세상에 굴복하여 살아갑니다.

요셉은 율법주의자가 아닙니다.

신앙인중에서 가장 주의할 사람은 잘 믿는 척 하는 신앙을 가진 사람입니다.

적당히 세상과 타협하고 때로는 비굴하게 머리 숙이고 정직하지 못하게 살아갑니다.

교회안에서만 거룩한 척합니다.

당시에 바리새인과 율법학자들은 전통을 잘 지키고 기도도 열심히 하는 모습을 보이고

십일조도 잘하여 스스로 생각하기를 잘 믿는다고 생각하여 자기 의를 나타냈습니다.

이들은 자기의 생각과 행동이 표준이 되어 자기 의를 중시하여 열심히만 하면 의로워진다는

생각을 가진 율법주의자들이었습니다.

 

진정한 믿음을 가진 사람은 모든 사람을 품습니다.

세상적인 지위와 명예가 올라가도 항상 겸손해 합니다.

한국의 지성을 대표하는 이어령 박사가 70에 회개하여 예수님을 구주로 영접하고 180도 바뀐

인생을 살고 있습니다.

그가 말하기를 한국교회의 현재 위기는 교회의 위기가 아니고 문명의 위기입니다 라고 했습니다.

교회 안에 발생하는 제반 문제는 교회 문제가 아니고

문명이 교회 역활을 대신하다 보니 나타나는 문제이다 라고 해석했습니다.

여기서 문명이란 계몽주의에서 출발한 인본주의(이성주의) 즉 과학, 정치, 경제, 교육,

문화등.....을 말합니다.

목사가 강단에서 이 과일 먹으면 죄를 짓게 됩니다. 하면 성도들은 시큰둥합니다.

그러나 의사가 이 과일을 먹으면 암에 걸립니다. 하면 성도들은 한명도 그 과일을 먹지 않습니다.

공영방송에서 이 과일을 먹으면 건강을 해칩니다, 하면 다음날 아무도 그 과일을 먹지 않습니다.

이처럼 우리시대는 하나님의 말씀보다 과학과 이성을 더 신봉하는 시대가 되었습니다.

50년 전에 사카린을 먹으면 암에 걸린다고 하여 정부가 발표한 이래 사카린을 아무도 먹지 않았습니다

2013년에 미국에서 그것이 잘못되었다고 발표했습니다.

세상의 사람들은 하나님의 음성보다 하나님의 말씀보다 과학과 학문의 소리를 더 신봉합니다.‘

이것이 문명의 위기이고 교회의 위기입니다.

사람들은 하나님 나라의 의보다 정치가의 포장된 의를 더 좋아합니다.

세월이 지나면 모든 것이 드러나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감옥에 가고 쓸쓸하게 퇴장합니까?

오래 전에 우리는 잘 살아보세 하고 외쳤습니다. 교회는 하면 된다 하고 외쳤습니다.

모든 것이 잘되고 ...모든 일을 하면 되었는데 ...

지금 우리시대는 그 열매가 맺힌 것이 아니고 오히려 영적으로 빈궁한 상태가 되었습니다.

사도 요한이 라오디게아 교회에 편지한 것처럼

나는 부자라 부요하여 부족한 것이 없다 하나 네 곤고한 것과 가련한 것과 가난한 것과 눈 먼 것과

벌거벗은 것을 알지 못하는도다.(3:17)

우리시대는 하나님보다 맘몬을 더 섬기는 모습을 많이 보게 됩니다.

교회 안에 사랑 없는 정의, 정의만 있고 사랑이 사라진 모습은 율법주의로 흐르고 맙니다.

교회는 사랑이 있고 정의가 있어야 합니다. 사랑과 정의가 흐르는 곳이 십자가입니다.

교회에서 일어나는 위기는 교회의 위기가 아니고 문명의 위기가 맞습니다.
당시에 힘있고 사회적인 지위가 있는 아리마대 사람 요셉은 죽음이 있는 곳에

당당히 나아갔습니다.

당돌히 빌라도에게 예수님의 시신을 달라했습니다.

얼마나 영적으로 당당한지 모릅니다.우리도 아리마대 요셉처럼 영적으로 당당해야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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