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 사람(20160317 박철규 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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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관리자 댓글 0건 조회 2,139회 작성일 16-03-19 09:15본문
한 사람
2015년 3월 17일 직원경건회 박철규 목사
본문 행9:43-10:5
봄이 찾아 왔습니다. 퀴즈를 하나 내겠습니다. 중학생들이 가장 가고 싶어하는 고등학교는?
알파고입니다. 요즈음은 AI(인공지능시대)시대가 도래했다고 합니다.
오늘은 분수령과 분기점에 대해서 먼저생각하고 말씀을 전하겠습니다.
분수령은 어떤 사실이나 사태가 발전하는 전환점 또는 어떤 일이 한 단계에서 전혀 다른 단계로 넘어가는
것을 말하고
분기점은 사물의 속성 따위가 바뀌어 갈라지는 지점이나 시기를 말고 또는
길 따위가 여러 갈래로 갈라지기 시작하는 곳
인생을 살다보면 분수령을 만나고 분기점을 만나게 됩니다.
본문에는 베드로가 등장합니다. 베드로가 만난 사람들이 나타납니다.
베드로의 인생에서 가장 중요한 분수령과 분기점이 되는 사람을 만나게 된 것입니다.
갈릴리 바닷가의 어부로 생활하던 베드로가 예수님을 만나 죄인임을 고백하고 예수님을
따르는 제자가 되었습니다.베드로는 예수님을 따르면서 마음과 생각을 고치고 제자로서
열정적으로 배우고 따랐습니다. 신앙은 남이 나를 대신하는 것이 아니고 내가 예수님을 만나는
것이 신앙입니다. 내가 믿음의 한 사람인 것입니다
오늘 여러분도 말씀을 듣고 믿음을 가져 예수님을 만나는 한 사람이 되기를 바랍니다.
이 한 사람이 성경에는 천하보다 귀하다라고 표현합니다.
베드로가 성령의 인도로 욥바라는 도시에 머물게 됩니다.
욥바에서 선행과 착한 행실로 알려진 다비다(도르가)가 죽어 다락방에 뉘어 있는 것을 베드로가
기도하여 하나님이 다비다를 살려 많은 욥바 사람들이 주님을 믿게 되었습니다.
그런데 베드로는 욥바에 시몬이라는 무두장이의 집에서 여러날을 머물렀습니다.
무두장이는 짐승의 가죽을 세공하는 직업을 말합니다.
유대인들은 무두장이를 가장 천한 사람으로 상종도 하지 않았습니다.
무두장이는 주거지역에서 떨어져 외진 지역에서 살았습니다. 무두장이나 백정이나 이런 직업은
유대인들이 아주 천시하고 저주하는 직업이었습니다.
이율배반적으로 유대인들은 저들의 직업은 저주하였지만 저들이 만든 가죽제품은 선호하였습니다.
베드로가 이런 무두장이의 집에 들어가 머물게 된 것입니다.
아마도 무두장이 시몬이 예수님을 믿고 주의 종 베드로를 청한 것 같습니다.
그렇습니다. 주님 안에서는 직업의 귀천이 없습니다. 빈부의 귀천이 없습니다.
거지의 집에도 들어가 유숙해야 합니다, 왜냐하면 주 안에서 모두가 한 형제요 자매이기 때문입니다
베드로와 무두장이 만남은 당시 계급사회의 문화를 타파하는 혁명적인 일이었습니다.
예수님도 유대인들이 죄인처럼 취급하는 세리라는 직업에 종사하는 사람을 불러 제자로 삼았습니다
오늘 본문에 가이사랴에 고넬료라는 백부장이 등장합니다.
그는 점령군 로마의 군대 백부장이었습니다.
그는 피식민지 유대땅에서 하나님을 믿는 군인이 되어 가족과 더불어 경건한 신앙생활을 하였습니다.
그는 백성을 많이 구제하는 사업도 하였습니다. 항상 하나님께 기도하는 이방인 신자였습니다.
당시에 유대인(베드로)들은 이방인을 짐승처럼 취급하여 저들에게는 구원이 없는 줄 알았습니다.
그러나 성령의 인도로 이방인 고넬료에게 복음을 전하고 세례를 주었으면 성렁이 임하는 모습을
보았습니다.
베드로 한 사람이 마음을 고쳐 먹으니 역사의 큰 전환점이 생기게 된 것입니다.
서울 한강 양화진에 선교사 묘역이 있습니다.
1893년 32세 나이로 우리나라에 선교사로 온 북장로교 선교사 사무엘 포맨 무어가 곤당골교회를
세웠습니다. 교회를 세우고 예수학당을 만들어 어린이들을 가르쳤습니다. 이것이 주일학교의
시초이기도 합니다. 이 학당에 봉주리라는 천민(백정)계급의 어린이가 다녔습니다.
어느 날 봉주리가 선교사님을 찾아와 우리 아버지가 장티푸스(당시에는 염병 혹은 열병)에 걸렸으니
와서 차료해 주십시오 간청했습니다.당시에 선교사님과 동역하던 에비슨이라는 의료선교사가 같이
있었습니다. 에치슨 선교사가 봉주리를 따라 백정들이 사는 마을에 찾아가 그의 아버지를
치료하여 주었습니다.
이분이 후에 고종황제의 주치의가 되었습니다.
봉주리의 아버지 박성춘은 백정으로 예수님을 영접하였습니다.
백정이 교회에 나오니 양반들이 난리를 피웠습니다. 같이 예배드릴 수 없다고 하여 자리를 나누기도
하였습니다.양반들이 반대하여 결국 곤당골 교회를 나가 새로운 교회를 세우니 이 교회가
홍운동교회입니다. 승동교회가 바로 이 교회입니다.
곤당골교회에서 연동교회, 서교동교회, 노량진교회등을 개척하였습니다.
박성춘은 후에 장로가 되었습니다.
봉주리는 우리나라 최초의 서양의사가 되었습니다.
복음은 한 사람에 의해 다이나마이트처럼 폭발력을 가진 역사를 가져옵니다.
무어선교사의 묘비에는 예수그리스도의 충복이라고 기록되어 있습니다.
한 사람의 변화로 말미암아 오늘의 역사가 있고 우리가 예수 믿게 된 것입니다.
2000년 전 베드로가 마음을 고쳐 무두장이의 집에 유숙하여 복음을 전한 것처럼
우리도 한 사람이 예수님을 믿어 인생의 분기점이 바퀴고 분수령이 되어 놀라운 역사가
나타나기를 기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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