힘써 여호와를 아는 삶(20151206 박철규 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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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관리자 댓글 0건 조회 2,079회 작성일 15-12-07 09:46본문
힘써 여호와를 아는 삶
2015년12월 06일 주일 맑은샘교회 주일예배 박철규 목사
성경 호6:1~6 요1:14
6:1 오라 우리가 여호와께로 돌아가자 여호와께서 우리를 찢으셨으나 도로 낫게 하실 것이요 우리를
치셨으나 싸매어 주실 것임이라
6:2 여호와께서 이틀 후에 우리를 살리시며 셋째 날에 우리를 일으키시리니 우리가 그의 앞에서 살리라
6:3 그러므로 우리가 여호와를 알자 힘써 여호와를 알자 그의 나타나심은 새벽 빛 같이 어김없나니
비와 같이, 땅을 적시는 늦은 비와 같이 우리에게 임하시리라 하니라
6:4 에브라임아 내가 네게 어떻게 하랴 유다야 내가 네게 어떻게 하랴 너희의 인애가 아침 구름이나
쉬 없어지는 이슬 같도다
6:5 그러므로 내가 선지자들로 그들을 치고 내 입의 말로 그들을 죽였노니 내 심판은 빛처럼
나오느니라
6:6 나는 인애를 원하고 제사를 원하지 아니하며 번제보다 하나님을 아는 것을 원하노라
오늘은 대림절 두 번째 주일입니다.
요즈음 TV에 복고풍을 많이 방영하고 있습니다. TBN에서 응답하라 1988이라는 내용을 보았습니다.
당시에 산업화 사회가 진행되면서 가가 가정에는 연탄을 많이 사용했습니다.
부자집에는 창고에 많은 연탄을 저장하여 사용하고 가난한 집에는 하루 사용할 분량인 2~3장만
있었습니다. 사용 후 부족하면 옆집에서 빌려 사용하기도 했습니다.
연탄이 에너지로 전부 소진되고 나면 하얀 연탄재만 남습니다.
안도현 시인의 “연탄재”라는 시가 있습니다.
자신의 몸을 전부 태워 그 껍데기만 고스란히 남아 있는데 누군가 그 연탄재를 발로 차서
깨뜨리는 사람들이 있었습니다.
연말과 성탄절을 맞아 우리는 누군가에게 뜨거움을 주고 따뜻함을 주는 연탄이 되어야 합니다.
여러분은 가난하고 헐벗고 힘들게 사는 사람들에게 따뜻함을 나누어 준 적이 있습니까?
예수님이 이 땅에 오심은 환난당하고 소외되고 어려움을 당한 자에게 찾아 오셨습니다.
주님은 우리를 뜨겁게 사랑하셨기 때문에 이 땅에 오셨습니다.
하나님은 사랑이라 했습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오늘 본문의 제목처럼
힘써 여호와를 알아야 합니다. 하나님을 알고 하나님을 따르는 삶을 살아야 합니다.
주님을 안다는 것은 주님의 말씀을 듣고 보고 행하는 것을 말합니다.
프랑스의 계몽주의 사상가 볼테르가 말하기를
성경은 죽은 책이다 앞으로 백년 후에는 아무도 성경책을 보지 않아 박물관에서만 성경을
볼 것이다 라고 했습니다. 그의 말은 틀렸고 지금 볼테르가 살던 집은 프랑스의 성서공회가
자리하여 성경을 보급하는 장소로 사용되고 있습니다. 아이러니입니다.
성경은 들고 다니는 책이 아닙니다. 성경은 장식용 책도 아닙니다.
성경은 읽지 않으면 고전이고 죽은 책이 됩니다.
성도는 말씀을 힘써 읽어야 하나님을 알 수 있고 하나님을 체험 할 수 있습니다.
교회는 오래 다녀도 성경을 모르면 아무런 의미가 없습니다.
교회 다니면서 성경을 들고만 다니고 설교시간에만 보고 집에 가서는 한 번도 보지 않으면
성도는 주님을 모르게 됩니다.
성탄을 앞두고 예수님을 잘 알아야 합니다.
성경을 읽고, 듣고 묵상하여 주님을 우리 마음에 모셔 들여야 합니다.
힘써 하나님을 알아야 합니다.
우리시대는 힘써 하나님을 알려고 하지 않습니다.
교회당 안에서만 알고 교회당 바깥에서는 잘 모릅니다.
주님이 이 땅에 성육신하여 오심은 어둠을 밝히기 위해 오셨습니다.
예수님은 빛과 생명으로 오셨습니다. 빛이 오는 곳에는 어둠이 물러가게 되어 있습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힘써 여호와를 알아야 합니다,
주님을 알고 주님의 삶을 따라가야 합니다.
성경을 보지 않고 (읽고, 들음) 예배드리고 살아 간다면 마귀의 유혹에 쉽게 넘어지고
그 신앙이 흔들리기 쉽습니다. 성경을 모르고 광신적으로 믿는 것도 미신에 빠지기 쉽습니다.
기독교가 단순히 소원을 빌고 응답을 받는 것이 믿음이라면 다른 종교와 같습니다.
기독교는 그것이 아닙니다. 기독교는 생명을 가진 살아있는 종교입니다.
믿음은 하나님을 알고 하나님을 아는 지식을 배워야 합니다.
성경은 인간이 하나님의 형상으로 지음을 받은 피조물임을 알려 줍니다.
하나님을 아는 것이 믿음보다, 사랑보다, 먼저입니다. 이것이 대단히 중요합니다.
사람이 살아가는 세상에서 신뢰라는 것이 있습니다.
사람이 사람을 서로 믿는 행위를 신뢰라고 말합니다.
신뢰는 상대방을 알아야 신뢰가 형성됩니다.
하나님을 향한 신뢰가 바로 믿음입니다.
하나님을 알고 신뢰로 나아가는 것이 바로 믿음입니다.
자세히 알지 못하고 하나님을 사랑한다는 것은 믿음이 아니고 그 사람의 감정입니다.
기독교는 감정의 종교가 아닙니다.
말씀이 육신이 되어 우리 가운데 거하니 은혜와 진리가 충만하더라 했습니다.
말씀을 가지고 말씀으로 찾아오시는 하나님을 바르게 만나 그 분을 믿는 것이 참 믿음입니다.
성도가 하나님을 사랑한다는 것은 하나님의 말씀을 아는 것을 말합니다.
호세아 선지자는 백성이 하나님을 알지 못하여 어려움을 당한다고 말했습니다.
성도 여러분 주님에 대한 바른 지식을 가져야 합니다.
지식과 지혜의 근본인 하나님을 아는 것이 믿음입니다.
다니엘은 하나님을 말씀으로 알았기 때문에 불 속에 들어갔습니다.
요셉은 하나님을 알고 따랐기 때문에 억울하게 감옥에 가도 순종했습니다.
예수 믿는 것은 크게 세 종류로 구분합니다.
첫째는 예수님의 사역중 기적을 믿는 것 (가난한 자, 병든자 고침)
둘째는 십자가에서 돌아가신 예수님과 부활을 믿는 것
셋째는 승천하여 보좌 우편에 계신 예수님을 믿는 것 — 함께 하시는 예수님
나는 이중에 어느 예수님을 믿고 있는가?
성도는 떡으로 사는 것 어니고 하나님의 입으로 나오는 말씀으로 살아야 합니다.
예수 사랑하심은 성경에 써있습니다.
다른 곳에서 하나님을 찾지 말고 성경이 가르쳐 주는데로 믿고 따라야 합니다.
성경을 주야로 묵상하여 하나님을 힘써 아는 것이 중요합니다.
요1:14 말씀이 육신이 되어 우리 가운데 거하시매 우리가 그의 영광을 보니 아버지의 독생자의
영광이요 은혜와 진리가 충만하더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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